김용섭의 TREND INSIGHT
부모로부터 물리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의 집에 얹혀사는 사람들을 캥거루족이라고 한다. 캥거루족보다 더 독한 표현으로 패러사이트 싱글이란 말이 있다. 패러사이트(Parasite)는 기생충을 의미한다. 20대가 부모에게 얹혀살면 캥거루지만, 30이 넘어서, 심지어 40에 가깝거나 넘어서도 얹혀살면 그건 패러사이트다. 패러사이트 싱글은 부모에게 얹혀살면서 식비나 주거비, 생활비 등을 부모에게 전가한다. 경제적 지원만 받는 게 아니라 밥도, 청소도, 세탁도 다 의존하는 것이다. 어릴 때 부모에게 돌봄을 받는 것을 나이 들어서도 그대로 이어가는 사람들이다. 일자리를 가지고 돈을 벌지만 그 돈은 자신을 위해서만 쓴다. 어떻게 보면 부모의 내리사랑을 이용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패러사이트 싱글, 기생독신(寄生獨身)이란 표현은 일본에서 1990년대 말부터 등장했다. 사실 이때가 히키코모리가 본격화된 시기이기도 하고 불황이 본격화된 시기기도 하다. 캥거루족이 부모의 그늘 아래에 있는 나약하고 무능한 사람의 이미지라면, 패러사이트 싱글은 자신의 독신 생활을 부모의 집에 얹혀살면서 누리는 이기적인 사람의 이미지다. 자식의 편의이자 이기심 때문에 부모의 부담은 더 커져간다.
한국사회는 성인이 된 자식이 부모와 같이 사는 것에 관대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성인이 되자마자 독립하던 것과 달리 우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기본이고 결혼하기 전까지 같이 사는 게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길어진 노후는 한국 부모들의 생각마저 바꾸기에 이르렀다.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얹혀사는 자식들이 오히려 당당하다보니 이들을 부르는 표현들은 모두 부정적인 것 일색이다. 과거엔 내리사랑으로 감싸거나 안쓰러운 존재로 여겼다면 이제 캥거루들은 불편한 존재다.
심지어 요즘 한국에선 리터루(Returoo)족도 증가했다. 리터루는 Return+Kangaroo, 즉 결혼을 위해 독립했던 자녀가 다시 부모의 집으로 돌아오는 현상을 말한다. 맞벌이 하는 젊은 부부들이 부모에게 집과 자녀양육을 의존하러 부모 집으로 들어오는 건데, 이 상황에서 중대형 아파트 수요가 급증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2015년 전용 85㎡를 초과하는 아파트 거래량은 9만5972건으로 전년 대비 20.9% 증가했다. 2014년에는 전년 대비 23.7% 증가했고, 2013년에는 전년대비 12.5% 증가했다. 3년 연속 중대형 평형 수요가 증가한 것이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덕분에 3대가 함께 사는 집을 보는 게 더 쉬워졌다. 핵가족이 1980년대 서울에서 촉발되었는데, 리터루족도 서울에서 촉발된다. 얼핏 보면 노부모를 모시고 사는, 아이를 둔 젊은 맞벌이 부부처럼 보이고 효도하는 기특한 3040 부부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경제적 이유 때문에 집을 합친 리터루족이 대부분이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trendhitchhiking@gmail.com
*김용섭은 TREND Insight & Business Creativity를 연구하는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이며, 저서로는 <라이프트렌드 2016: 그들의 은밀한 취향> <라이프 트렌드 2015: 가면을 쓴 사람들> <라이프 트렌드 2014: 그녀의 작은 사치> <완벽한 싱글> <라이프 트렌드 2013: 좀 놀아본 오빠들의 귀환> <트렌드 히치하이킹>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