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유영국 화백 탄생 100주년展 한평생 추상회화 외길 매진… 청년기부터 말년까지 100여점 전시
유채화 ‘산’(1961년). 형체가 또렷하지 않은 가운데 무엇을 담았는지 또렷하게 다가온다. 작업 자체를 무엇보다 행복해했음을 보여주는 구석구석의 흔적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사진으로는 그저 뭉툭한 형상의 색색 도형만 눈에 들어올지 모른다. 하지만 실물 그림 앞에 서면 각각의 ‘살갗’이 도드라져 다가온다. 사람의 인상에서 피부 결이 차지하는 비중이 의외로 크듯 유영국 화백(1916∼2002·사진)의 그림과 마주할 때 표층의 질감이 전하는 감흥의 몫은 상당하다.
유 화백은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 일본 도쿄 문화학원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어린 시절 뱃사람이 되기를 꿈꿨던 그는 유학 후 한동안 부친 소유 어선을 타기도 하고 6·25전쟁 중에는 폐허가 된 고향 양조장을 복구해 운영하며 술지게미를 사료 삼아 돼지를 치는 등 강인한 생활력을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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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산과 숲 많은 고장에서 자라 산과 숲을 많이 그렸다. 산은 내 앞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고 말했다. 새벽 어스름을 막 타고 넘은 수풀 안개 위로 빛줄기가 쏟아진다. 산등성 뒤로 별이 긁혀 떨어진다. 애써 조급하게 앞서 나가려 한 기색을 찾을 수 없음에도 세련미가 가득하다.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등과 다른 흐름의 호방함이다. 김인혜 학예연구사는 “일찌감치 추상미술의 길을 선택해 평생 신념을 이은 에너지에 대한 질문에 유 화백은 늘 ‘간섭받지 않고 자유롭고 싶었다’고 답했다”고 설명했다.
유채화 ‘작품’(1965년). 유영국 화백은 48세 때 첫 개인전을 연 뒤 작가그룹과 절연하고 혼자만의 작업에 수도하듯 몰두했다.
유 화백은 “예순까지는 기초를 좀 해보고 이후 자연으로 더 부드럽게 돌아가 보자는 생각으로 그렸다. 그림 앞에서 느끼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나는 다시 태어나 새로운 각오와 열의를 배운다”고 했다.
알지 못할 위로의 정체는 아마 그 열의의 온기였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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