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노인영화제 대상 받은 단편 ‘청춘꽃매’ 할머니 감독들
영화감독, 배우가 된 할머니들이 대상 수상작 ‘청춘꽃매’ 영화 포스터를 들고 ‘하트’를 그려 보이고 있다. 할머니들은 “무릎만 성하다면 앞으로도 계속 영화를 만들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경제 기자kjk5873@donga.com
뽀글대는 짧은 파마머리에 검푸른 눈썹 문신…. 영락없는 ‘동네 할머니’ 외모지만 모두 어엿한 ‘영화감독’이자 ‘배우’들이다. 할머니들은 최근 폐막한 서울노인영화제에서 15분짜리 단편영화 ‘청춘꽃매’를 선보여 대상을 받았다. 남편과 사별한 충격으로 치매를 앓게 된 할머니와 그를 위로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재치 있게 다뤄 호평을 받았다.
2일 오후 경기 부천시 오정구에 있는 작은 사랑방에서 할머니들을 만났다. 연신 소녀처럼 깔깔대며 웃는 할머니들의 ‘수다 삼매경’에 인터뷰는 몇 번을 멈췄다 다시 진행해야 했다.
옆에 있던 조송옥 할머니(81)가 ‘대상’이라고 적힌 아크릴 트로피를 찾아오더니 서 할머니에게 척 안겨 주면서 말을 이었다. 조 할머니는 주로 촬영을 담당했는데, 이번에 영화를 촬영하면서 난생처음 ‘카메라(캠코더)’를 만져 봤다고 했다. “젊은 사람만 영화 찍으란 법 있는가? 치매 걸린 친구를 위로한다고 노래방 가는 장면이 있는데 내가 30년 만에 노래방을 간 것 아니오. 내 마음이 훨훨 날 것 같고 덩실덩실 춤까지 추고 싶더라니까.”
두 할머니는 영화에 출연도 했다. 특히 서 할머니는 치매 걸린 할머니의 사별한 할아버지 역할을 맡았다. “할아버지 역할을 하다 보니 ‘간 지’ 40년 된 영감이 떠오릅디다. 아유, 이상하게 괜히 서글퍼지는 거라. 6·25전쟁 휴전되고 결혼을 했는데, 우리 영감 살았으면 지금 어떻게 생겼을까 별생각이 갑자기 들어서….”
할머니들 중 ‘유머 감각 1등’이라는 김순자 할머니(73)가 순간 숙연해진 분위기를 깼다. “나는 다음 영화에선 엄청나게 심술쟁이 역할을 할 거라고. 요새 드라마 보면서 연기 연습도 하는데 워찌나 재미난지. 그 9번에서 하는 드라마 보면 나오는, 그 있잖아! 그 조카 남편을 가로챈, 하여튼 그 양반 같은 역할이 탐나. 에이, 나이 먹으니까 이름도 생각이 안 나네. 그래도 아직 대사 외울 만해!(웃음)”
할머니들은 지역 민간 단체가 운영하는 사랑방에 매주 수요일마다 모여 한글 공부도 한다. 글을 배우며 ‘위시리스트’를 꼽아 보던 중 ‘영화 한번 찍어 보자’는 얘기가 나왔다고 했다. 치매 할머니의 친구 역할로 출연한 박복희 할머니(74)는 “노인들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단어 두 개가 치매와 사별”이라며 “영화를 찍다 보니 공포심이 조금씩 극복되는 것도 같았다. 내 아들딸들, 동년배 노인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전했다.
“우리는 나이 여든 먹어서도 아리랑 극장에 갈 만한 영화를 찍지 않았겠수? 영감 먼저 보내고, 이래저래 힘든 사람들이 이 영화 보고 힘 좀 냈으면 좋겠소. 아, 근데 인터뷰는 요기까지만 하믄 될랑가? ‘슛’ 들어간 지가 언젠데 영 끝나질 않아서.”
인터뷰 말미, ‘감독’ 서 할머니의 한마디에 온 사랑방이 웃음바다가 됐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