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국정은 마비
《 경제와 안보의 위기가 동시에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와 정부의 국정 컨트롤타워 기능이 마비되면서 초유의 국가 위기가 닥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치권이 사실상의 대통령 유고 상태를 서둘러 수습하지 않을 경우 국정 공백을 넘어 국정 운영이 완전히 붕괴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공직사회 동요]외교2차관-공공기관 CEO 후임 못채워
개혁 인사로 가라앉은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것이 시급하지만 인사 검증을 해야 할 청와대 참모진이 물갈이되면서 부처별 주요 보직에 대한 인사는 전면 중단된 상태다. 주유엔 대사로 임명돼 자리를 비워야 하는 조태열 외교부 2차관의 후임 인선은 한 달 가까이 멈춰 서 있다. 한국석유관리원, 한국예탁결제원 등 정부 산하 공공기관에서도 최고경영자(CEO) 후임 인선 작업이 중단돼 경영 공백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경제개혁 표류]노동5법 사실상 무산… 성과연봉제 위기
당장 규제프리존특별법, 공유경제 활성화 방안, 신산업 육성책 등 정부의 경제 활성화 방안이 국회 문턱을 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특히 야당이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노동 5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사실상 박근혜 정부 임기에서 처리가 무산됐다.
실제로 3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예산소위는 미르재단이 관여한 정황이 드러난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인 ‘코리아에이드(K-Aid)’의 내년도 예산 42억 원을 삭감했다. 당초 정부는 아프리카 6개국에 지원할 143억 원, 코리아에이드 센터 운영비 등 17억 원을 더해 모두 160억 원을 편성했다. 코리아에이드는 의료진이 진료를 보면서 케이팝과 K밀(한식)을 소개하는 이동식 트럭으로 5월 박근혜 대통령의 에티오피아 우간다 케냐 순방 당시 시범 실시됐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미르재단이 사업 기획 단계부터 참여했고 K밀을 개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야당은 ‘최순실표 예산’이라며 삭감을 예고해 왔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올해 금융권 최대 현안인 성과연봉제 도입이나 인터넷전문은행 출범을 위한 은행법 개정안, 한국거래소의 지주사 전환을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안 등이 사실상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 등 양대 노총 소속 공공부문 노조들은 31일 기자회견을 열어 “성과연봉제에도 최순실의 국정 농단이 개입됐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갖고 있다”며 성과연봉제 폐기를 주장하고 나섰다.
[외교활동 타격]해외순방 제약… 한일정보협정 여론 악화
대규모 시위가 잇따르고 야당의 압박 수위가 높아지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정상적인 대외활동을 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통상적으로 이뤄진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27일 국방부가 발표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협상 재개 결정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최순실 사태의 혼란을 틈타 여론도 무르익지 않은 상태에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은근슬쩍 추진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외교안보 부처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안보태세 비상]혼란 틈탄 北도발 우려… 사드도 영향
일각에선 최순실 사태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늦어도 내년 말까지 배치하기로 한 일정에도 차질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대통령의 역할은 사드의 한반도 배치 여부와 배치 부지를 최종 결정하는 것으로, 세부 절차와는 관련이 없다는 게 국방부의 설명이다.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7일 열릴 예정이던 방위산업 진흥 확대회의는 최순실 사태로 연기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리로 얼룩진 방위산업을 바로 세우고 각종 규제를 철폐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회의는 박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처음 열렸고, 1980년에 중단된 지 36년 만에 열릴 예정이었다. 국방부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회의를 대신 주재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적 혼란을 틈탄 북한의 도발도 우려된다. 군은 미국 대선(8일) 등을 틈타 북한이 추가 핵실험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기습 발사 등 도발을 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은 1일부터 7박 8일 일정으로 호주, 뉴질랜드, 인도네시아를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북한이 국내 상황이 어수선한 것을 노려 도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순방 일정을 연기했다.
외교라인은 어수선한 분위기 다잡기에 나섰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31일 실국장회의에서 “중심을 잡고 흔들림 없이 업무에 매진하라”고 지시했다고 참석자가 전했다. 1일 열릴 한미 6자회담 수석대표 협의도 대북 압박 지속 및 ‘대북 공조 이상 없다’는 메시지를 보여주려는 목적이 강하다.
세종=손영일 scud2007@donga.com /정임수·손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