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형권 뉴욕 특파원
동아일보 기획시리즈 ‘창업가 키우는 글로벌 공대’ 취재차 지난달 미국 코넬대 공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를 방문했을 때 만나는 취재원마다 이렇게 질문했다. MIT 혁신창업(I&E·Innovation & Entrepreneurship)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스티브 하라구치 디렉터(30)의 답변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사회라면 학생들에게 ‘창업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면 안 된다. 어떻게 안 두려울 수가 있나. 그 대신 머리 좋은 고위직 공무원이나 삼성전자 직원에게 1년 정도 창업을 시켜보는 건 어떤가. 실패해도 여전히 공무원이고 삼성 직원이니 무슨 두려움이 있겠나.”
광고 로드중
두 공대에서 만난 한국인 유학생 중 상당수는 대학 진로 결정 때 ‘제발 공대 대신 의대 가라’는 집 안팎의 권유를 받은 적이 있거나 공대 재학 중 의학전문대학원으로 방향을 튼 친구나 선배 때문에 심란했던 경험이 있었다. 창업을 꿈꾸는 미국 학생들에게선 그런 고민을 들을 수 없었다. 실수나 실패에 대한 걱정이나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실패는 더 큰 성공을 위한 좋은 경험일 뿐’이란 인식이 깊었다. 코넬대 공대 박사과정의 한 여학생은 “창업가정신은 기꺼이 실패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라고 했다.
교수들은 ‘강의실 공부와 세상의 변화를 어떻게 접목할 것이냐’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이 학교의 로버트 셰퍼드 교수(35)는 “고령화사회에 맞는 혁신이나 비즈니스 모델을 찾기 위해 학생들을 모두 노인 요양시설 등으로 보내 ‘소비자’(노인)를 직접 관찰하고 면담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두 학교 모두 다양한 강의나 실전 프로그램, 경진대회 같은 ‘창업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팀 회의, 실습, 동문 네트워킹을 할 수 있는 창업가센터 하드웨어가 완비돼 있었다. 한국 대학생들이 취업 공부를 위해 커피전문점을 전전하며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학생)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낼 때 코넬대와 MIT 학생들은 고급 카페 같은 창업가센터에서 ‘세상을 뒤집을 혁신’을 밤새워 고민하고 있었다. 창업가 동문 선배들은 후배들에 대한 인턴십 및 멘토링 서비스, 창업센터 건축비나 운영비 기부 등으로 학교의 은혜에 보답했다.
“한국 학생의 돌탑은 돌멩이 위에 다시 돌멩이를 올리는 방식이어서 한번 삐끗하면 와르르 무너지지만 미국 학생 돌탑은 무더기로 넓게 쌓아서 한 번에 무너질 일이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말한 MIT 박사과정 유학생은 “나는 실수를 많이 하는 편이어서 1년에 한 번만 보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안 보고 대학에 가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고 말했다.
광고 로드중
SAT만 봐도 미국은 실수나 실패를 해도 다시 성공(고득점)에 도전할 두 번째, 세 번째 기회가 많은 사회다. 반면 한국은 모든 학생에게 똑같이 최소한의 기회만 줘 ‘참으로 공평한’ 사회다. 창업 생태계의 한국식 해법은 수능과 SAT의 이런 딜레마를 푸는 것부터 엉뚱하게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부형권 뉴욕 특파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