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하지만 미군과 연합훈련 중단 등을 언급했던 두테르테 대통령은 중국 방문 기간에도 “미국과 작별해야 할 시간” “미국과의 결별(separation)” 등의 발언을 쏟아내며 탈미(脫美) 행보를 가속했다.
한 중국 전문가는 두테르테 대통령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 20일자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미국이 남중국해에 개입하는 구실은 중국과 필리핀 간에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 때문이었다. 이제 그런 갈등이 없어졌으니 미국이 개입할 정당성이 의문시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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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테르테 대통령이 앞으로 탈미친중 노선을 어디까지 끌고 갈지는 두고 볼 일이다. 다만 두테르테 대통령의 행보는 아태 지역에서 필리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과의 관계를 약화시키는 중국의 경제적 유인을 ‘소프트파워’로 규정하고, 이것이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에도 파괴적인 신호를 보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베트남은 이달 2일 미국과의 종전 21년 만에 깜라인 만에 미군 군함의 기항을 허용했지만 22일부터 4일 동안 중국 군함 3척의 기항도 용인했다.
심지어 2차 대전 후 아태 지역에서 미국의 가장 강력한 군사동맹국인 호주도 최근 여론 조사에서 응답자의 59%는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과는 어떤 군사훈련도 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트럼프나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중 누가 대통령이 되건 호주의 중국 쏠림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두테르테의 최근 행보를 ‘외교모험주의’라고 비판하면서도 “필리핀이 중국과 시시덕거리는 데는 미국도 반성할 것이 있다”고 꼬집었다. 버락 오바마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은 그다지 열의가 보이지 않았고 필리핀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의 충성심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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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