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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평인]서울대 점거농성

입력 | 2016-10-12 03:00:00


 “월가를 점거하라(Occupy Wall Street)”란 말로 우리에게 익숙해진 occupy는 군사 용어로는 점령이지만 시위 용어로는 점거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서구에서 민주주의 혁명이 퍼져 나갈 때 시위대는 바리케이드를 치고 싸웠지 점거 같은 건 할 수도 없었다. 점거는 시위가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용인되고 나서의 일이다. 미국 자동차회사 GM의 노동자들이 1936년 미시간 주 플린트의 공장에서 연좌농성을 한 것이 점거의 시작이라고 한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점거는 불법이라고 본다.

 ▷대학 건물 점거는 1968년 전 세계적인 학생운동에서 두드러졌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프랑스 낭테르대, 일본 도쿄대 등으로 대학 점거 농성이 번져 갔다. 우리나라에서는 1986년 건국대 도서관 점거 농성이 사회적 관심을 끈 최초의 대학 점거 농성이었다. 시위가 과격화한 1980년대에 들어서도 1984년까지는 경찰이 대학에 상주하고 있어서 점거 농성은 드물었고 시위라고 하면 화염병과 돌멩이를 던지는 바리케이드전(戰)식 시위가 주를 이뤘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학 점거 농성은 점차 정치적인 것에서 학생 생활과 관련된 것으로 변해 갔다. 이것도 유행처럼 확 일어났다가 잠잠해지는 패턴이 있는 듯하다. 2000년대 초반에는 등록금 인상 반대를 외치며 총장실이나 본부를 점거해 농성을 벌인 대학이 많았다. 올해는 여름방학 전에 이화여대 학생들이 고졸 직장인을 위한 대학 신설에 반대해 시작한 대학본부 점거 농성이 동국대 등으로 번지더니 10일부터는 서울대 학생들이 시흥캠퍼스 신설에 반대해 대학본부를 점거했다.

 ▷점거는 그것이 불법인 것을 떠나 대학에는 어울리지 않는 시위 방식이다. 소통 부재의 원인이 대학본부 측에 있는지 학생회 측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대학의 주인은 교수만도 아니고 학생만도 아니다. 대학만은 억지이더라도 소리만 크게 지르거나 끝까지 버티기만 하면 이긴다고 여기는 사회를 닮아가서는 안 된다. 토론해서 지는 쪽이 깨끗이 물러설 줄도 알아야 대학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