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인간에게는 ‘의존적 욕구’라는 것이 있다. 어린 시절 이 의존적 욕구가 잘 채워지지 않으면 아이는 부모가 사랑을 줬어도 받지 못했다고 느낄 수 있다. 그 욕구는 사랑이 필요한 그 순간에 사랑해 주고, 보호가 필요한 그 순간에 보호해 주고, 위로가 필요한 그 순간에 위로해 주고, 옆에 있어 주기를 원한 그 순간에 곁에 있어 줘야 채워진다. 그 순간이 어긋나면 사랑받지 못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순간만이 아니다. 사랑의 형태 또한 아이가 충족감을 느끼는 형태여야 한다. 아이가 원하는 사랑은 A인데, 부모는 자꾸 B, C, D를 준다. 사랑의 양은 많아도 A를 받지 못한 아이는 충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1년 365일 24시간 아이 옆에서 붙어서 “오냐 오냐” 하면서 아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는 것이 충족감을 주는 사랑은 아니다. 반대로 아이가 원하는 형태로 타이밍을 잘 맞추면 단 한순간, 단 한마디 말로 아이는 ‘아, 나는 우리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있구나’라고 느끼게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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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여자는 아버지가 그리울 때마다 들꽃을 봤다. 그러면 그리움이 많이 채워졌다고 한다. 들꽃을 보면 아버지가 들꽃 다발을 만들어서 주던 그 장면이 떠오르면서 그때의 행복감이 온몸을 감쌌다. 살면서 힘든 고비가 있을 때마다 그 기억은 언제나 큰 힘이 되었다. 단 한 번이었지만, 아버지의 들꽃 다발은 딸에게 ‘아, 내가 사랑받는 사람이구나’라는 충족감을 준 것이다.
우리는 아이를 사랑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사랑을 준다. 그런데, 과연 아이는 내 사랑을 ‘사랑’이라고 느낄까. 한 번쯤 곰곰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아이가 밥을 잘 안 먹는다. 엄마는 온갖 좋은 것을 찾아다닌다. 갈아서도 먹여 보고, 으깨서도 먹여 본다. 아이가 먹지 않으려고 하면 억지로 입을 벌려서라도 먹이려고 한다. 이것도 엄청난 사랑이다. 하지만, 아이는 그것을 하나도 사랑이라고 느끼지 못한다. 아이는 그 시간이 너무 괴로웠고, 숟가락을 들고 있는 엄마의 얼굴이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아빠는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어떻게든 아이를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일을 한다. 이것도 사랑이다. 하지만 이 또한 아이는 사랑이라고 느끼지 못한다. 아이가 기억하는 것은 늘 힘들어 죽겠다고 화내고 짜증내는 아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보통 아이는 좋은 먹을거리, 풍요로운 생활보다 부모의 따뜻한 눈 맞춤, 목소리, 얼굴, 손길을 더 원한다. 부모와 깔깔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를 바란다. 부모의 주는 사랑과 아이가 원하는 사랑이 어긋나면, 죽도록 사랑해 놓고도 서로 애증(愛憎)하는 사이가 될 수도 있다.
내 아이가 원하는 형태의 사랑을 찾으려면 긴 시간을 두고 내 아이를 관찰해야 한다. ‘어떤 말을 들을 때, 어떤 행동을 할 때, 어떤 경험을 할 때, 우리 아이가 마음이 편해지고 행복감을 느끼는가’를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형태의 사랑을 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내 아이가 원하는 형태로 사랑을 주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긴 하다. 하지만 곰곰이 고민하면 결국은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내 아이’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