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요즘! 어떻게?]새 보러 갔다가 뇌경색… 새 보기 위해 다시 일어서

입력 | 2016-09-29 03:00:00

‘새박사’ 윤무부 경희대 명예교수




20일 서울 동대문구 자택에서 만난 윤무부 경희대 명예교수. 그는 “주변에서 새를 흔히 볼 수 있어 새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사람은 큰 천적 중 하나”라며 “새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보다 거리를 두고 쌍안경으로 바라보는 게 새를 배려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작은 사진은 윤무부 교수가 촬영한 천연기념물 제199호 황새. 추석 연휴 동안 아들인 윤종민 한국교원대 황새생태연구원 박사와 함께 충남 당진에 가서 찍은 것이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 윤무부 명예교수 제공

《“뇌경색으로 쓰러져 시한부 선고를 받았어요. 경기 양평군에 묫자리 알아보고 ‘고(故) 윤무부’라고 새긴 묘비도 만들었죠. 다시 태어나 10년 더 살고 있네요(웃음).” ‘새 박사’라는 친근한 이미지로 과거 TV 프로그램을 종횡무진하며 인기를 얻던 윤무부 경희대 명예교수(75). 2006년 겨울 그는 두루미를 보러 강원 철원군에 갔다가 뇌경색으로 쓰러져 전신마비가 왔다. 한동안 그가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유다.》
 
 20일 서울 동대문구 한천로 자택에서 만난 그는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이라고 보이지 않을 만큼 유쾌했다. 10년이 지났지만 달걀을 쥔 모양으로 움직이지 않는 오른손과 역시 불편한 오른다리가 후유증의 심각성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그분(새)’ 다시 보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재활했어요. 지방에 가야 하니 왼 손발로 운전하는 상상훈련 2년, 왼손 젓가락질로 하루 콩 100개씩 옮기는 훈련 3년…. 새로 DSLR 카메라도 장만해 ‘내가 저 카메라 들고 새를 담아야지’ 하는 마음도 먹고요. 하하.”

 오른손잡이이던 그는 이제 왼 손발 사용이 익숙하다. 왼발로 개조도 안 된 차의 페달을 밟고, 왼손으로 핸들을 잡으며 요즘도 방방곡곡 새를 보러 다닌다. 요즘도 꾸준히 재활한다는 그는 “2년 전부터 모기가 오른손을 물면 가려움이 느껴질 정도로 상태가 호전됐다”고 했다.

 평생 새만 보며 살아온 그의 모습은 시쳇말로 ‘성공한 덕후’다. 부인과 둘이 사는 그의 자택은 새 박물관이나 다름없다. 방 한 칸에는 수리부엉이와 제비 등 300여 종의 모습을 담은 60분짜리 6mm 테이프 300여 개, 새 소리만 담은 미니 CD 또한 수백 개가 있다. 30년 넘게 전국을 누비며 수집한 자료에는 테이프마다 번호가 붙어 있고 별도 수첩에는 상세한 정보가 적혀 있다.

 ‘No.49 1559 뿔논병아리 알 품기 시화호.’ 이는 49번 테이프 15분 59초부터 시화호에서 촬영한 뿔논병아리의 알 품는 모습이 나온다는 뜻이다. 새 모습을 생생히 담기 위한 DSLR 카메라 수십 대, 새소리 수집 장치, 관찰용 쌍안경과 망원경 등 수를 헤아리기 힘든 장비들이 그의 손이 닿을 만한 곳곳에 있다.

 새 박사는 또 다른 새 박사도 길렀다. 아들인 윤종민 한국교원대 황새생태연구원 수석연구원(42)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현장을 다니며 새를 보고 자라온 ‘새 네이티브’다. 그가 속한 연구진은 지난달 세계 최초로 포식자가 새 둥지에 미치는 영향을 밝혔는데 연구 결과가 세계적 과학학술지인 네이처의 자매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실렸다.

 “(아들이) 저한테 새 이야기를 듣던 게 엊그제 같아요. 그런데 추석 때 아들하고 충남 당진으로 위치 추적 장치를 단 황새를 보러 가서 제가 새 이야기를 듣고 있었네요. 뿌듯하죠(웃음).”

 새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이룬 그의 남은 소원은 뭘까. “새 인터넷 박물관과 남북통일”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인터넷 박물관은 사이트에서 제비 사진을 클릭하면 그가 수집한 영상, 울음소리, 서식지 정보 등 제비에 관한 모든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식이다.

 “독수리가 북한에서는 ‘번대수리’라 불려요. 괭이갈매기는 ‘검은꼬리갈매기’고요. 남북한에서 200여 종의 새를 각기 다르게 부르고 있어요. 통일이 돼야 새 이름도 통일될 텐데….”

 새에 살고 새에 죽을 뻔했던, 새 박사다운 대답이었다.


 
:: 윤무부 명예교수가 권하는 새와 ‘젠틀’하게 만나기 ::
 
―쌍안경·망원경은 필수. 새는 거리를 두고 봐야 ‘리얼리티’가 나온다.
―마주치면 ‘얼음’. 새의 기지개켜기는 도망갈 준비. 경계심 풀 때까지 기다린다.
―라이트·플래시는 OFF. 강한 빛에 놀란 엄마 새는 둥지도 포기한다.
―소란은 금물. 새의 청력은 사람의 200배 수준. 낮말은 새가 듣는다는 말이 괜한 게 아니다.
 
김배중기자 want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