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24와 함께하는 독자서평] ◇꽃보다 붉은 울음/김성리 지음/292쪽·1만4000원·알렙
소설가 존 버거는 시와 소설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소설은 승리와 패배로 끝나는 모든 종류의 싸움에 관한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모든 것이 결과가 드러나게 되는 끝을 향해 진행해 간다. 시는 그런 승리와 패배에는 관심이 없다. 시는 부상당한 이를 돌보면서, 또 승자의 환희와 두려움에 떠는 패자의 낮은 독백에 귀를 기울이면서 싸움터를 가로질러 간다. 시는 일종의 평화를 가져다준다.”(‘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에서)
소설이 어떤 서사의 전모라면, 시는 그 서사 속에 갇힌 ‘부상당한 이’의 독백이다. 시는 역설의 언어이기에 평화로의 도약이 가능하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시에서 치유의 희망을 가늠하기도 한다. 저자 김성리 씨는 간호사로 일하다 뒤늦게 문학을 공부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품기 시작했다. 몸을 치유하는 의학과 마음을 치유하는 문학의 융합이었다. 치료가 진단을 통해 처방을 하고 의학 기술로 병을 낫게 하는 것이라면, 치유란 상처받은 내면을 돌보고 안아줌으로써 상실감과 절망감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고통을 직면하고 마음을 드러내는 언어로서 시의 가능성을 본 것이다. 그는 이를 ‘치유시학’이라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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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말란, 이숙자, 요시코. 어느 이름으로도 규정할 수 없었던 할머니의 삶은 11편의 시, 그리고 하나의 서사가 됐다. 그리고 거기서 치유의 확신을 얻은 저자의 열망이 더해져 책으로 남았다. 이 책의 제목은 서정주 시인의 ‘문둥이’라는 시에서 가져왔다. ‘문둥이는 서러워(…)/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할머니는 소천했지만, ‘꽃보다 붉은 울음’ 같았던 할머니의 삶이 여기 우리 앞에 있다.
김진형 경기 파주시 야당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