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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 기자의 대중없는 大中小 의 배반

입력 | 2016-08-29 15:25:00


음식점의 소짜와 대짜는 가격 차이만큼 양에도 확연한 차이가 있을까. 누구나 한 번쯤 궁금해해봤지만 아무도 세어보지 않았던 대, 중, 소 크기별 음식 양의 비밀.


‘짜장이냐 짬뽕이냐?’는 종종 우리를 결정 장애에 빠지도록 하는 화두다. 하지만 사실 통계를 보면 한국인은 짜장과 짬뽕 사이에서 별로 고민을 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2014년 한국갤럽이 선호하는 중국 음식에 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짜장면(46%)을 꼽은 사람이 짬뽕(21%)을 꼽은 사람에 비해 2배 이상 많았다. 고민이라고 하기엔 압도적인 차이다. 대신 이건 어떤가. ‘셋이서 탕수육을 시켜야 하는데 중짜를 시킬까? 대짜를 시킬까?’ 중짜는 부족할 것 같고 대짜를 시키기엔 가격이 부담돼 고민일 때가 많을 것이다. 음식점 사장님들은 무조건 가격이 비싼 대짜부터 추천하곤 한다. 중짜와 대짜는 가격 차이만큼 음식 양도 확연한 차이가 있을까. 누구나 한 번쯤 궁금해해봤지만 아무도 세어보지 않았던 음식점 대, 중, 소의 비밀. <여성동아> 독자들이 궁금한 건 무조건 실험해보는 필자가 탕수육을 비롯한 음식들의 개수를 다소 좀스럽지만(?) 일일이 세어봤다.

1 해물들 출석 체크
첫 번째 타깃은 빨간 양념에 버무린 아귀와 각종 해물들이 아삭한 콩나물과 콜래보레이션을 이루는 해물찜. 먹으러 갈 때마다 대, 중, 소 사이즈 고민을 가장 많이 하게 되는 음식이다. 언뜻 보기에 대, 중, 소 에 따라 음식 양에 차이가 있고 실제로 사이즈별로 가격 차가 많이 나기도 한다. 필자가 동네에서 자주 찾는 해물찜 집을 방문했다.

소짜는 5만1천원, 중짜는 6만1천원, 대짜는 7만1천원으로 다소 비싼 가격대였다. 필자를 포함한 세 명의 취재진이 각기 다른 타이밍에 소, 중, 대의 해물찜을 각각 포장 주문해봤다. 이윽고 한곳에 모여 각자가 사 온 해물찜 소, 중, 대를 해물의 종류별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오징어, 꽃게, 새우, 아귀 등등. 그동안 해물찜을 숱하게 먹어왔건만 이렇게 일일이 해물의 개수를 세면서 먹은 적은 없었다. 음식점에서 알아서 줬으려니 하고 믿고 먹어왔던 것이다. 해물의 출석 체크가 모두 끝났다. 일단 오징어는 소, 중, 대 모두 한 마리씩 들어가 있었다. 대짜라고 오징어 다리가 몇 개 더 들어 있진 않았다. 모두 오징어 다리는 열 개씩. 몸통도 하나씩. 차이는 없었다. 꽃게는 차이가 분명했다. 소짜는 꽃게 한 마리, 중짜는 꽃게 한 마리 반, 대짜는 두 마리. 정확히 반 마리씩 차이가 났다. 새우의 차이는 조금 이상했다. 소짜는 세 마리, 중짜엔 다섯 마리가 들었는데, 대짜엔 네 마리밖에 들어 있지 않았다. 대짜를 센 취재진에게 몇 마리 까 먹지 않았냐고 추궁했지만 그는 정직한 남자였다. 새우는 대짜보다 중짜가 오히려 한 마리 더 많이 들었다. 다음은 주연 격인 아귀의 차례. 소짜와 중짜의 아귀는 똑같이 330g. 그런데 대짜는 아귀가 345g. 고작 15g 차이였다.

뭔가 이상했다. 소짜와 중짜, 대짜는 각각 1만원씩 가격 차이가 났지만 해물의 양은 차이가 거의 없었다. 중짜와 소짜는 아귀도 오징어도 새우도 양이 비슷했고, 대짜와 중짜의 차이는 홍합 한 개, 꽃게 반 마리, 아귀 한 조각, 급기야 새우는 중짜보다 한 마리 적었다. 1만원을 더 지불했는데도 말이다. 이상했다. 포장 용기도 대짜로 갈수록 더 컸고 음식점에서 주문할 때도 옆 테이블이 주문한 음식의 양과 눈대중으로 많은 차이가 나 보였는데, 정작 해물들의 개수는 거기서 거기라니. 비밀은 바로 콩나물에 있었다. 분명한 것은 소, 중 ,대 사이즈별로 콩나물의 차이는 엄청났다는 점. 한눈에 보기에도 소짜보단 대짜에 콩나물의 양이 어마어마하게 들어 있었다. 해물찜이 아니라 콩나물찜이라고 이름을 바꿔야 할 정도였다.

2 탕수육 가격은 접시 차이?
이번엔 고소하고 바삭한, 온 국민이 사랑하는 탕수육을 파헤쳐보기로 했다. 주머니 사정 가벼웠던 대학 시절, 여럿이 모여 탕수육 대짜를 시키곤 눈치 보며 더 많이 먹으려 애썼던 추억이 떠올랐다. 그땐 한창 먹성이 좋을 때라 그랬는지, 대짜를 시켜도 늘 양이 부족했다.

서울의 한 유명한 중국집. 탕수육 소짜는 1만2천원, 중짜는 1만7천원, 대짜는 2만2천원. 각기 다른 장소에서 탕수육 소, 중, 대를 주문해 받은 뒤 우리는 해물들의 출석을 체크했던 그곳으로 다시 모였다. ‘탕수육만큼은 정직하겠지.’ 해물찜으로 상처 받은 마음을 이렇게 애써 위로하며 탕수육의 개수를 세기 시작했다. 일단 양배추 샐러드를 제외한 탕수육 고기만의 무게를 재봤다. 소짜는 410g, 중짜는 490g, 대짜는 770g이었다. 그런데 소짜와 중짜의 차이가 미미했다. 고작 80g, 탕수육 일곱 조각에 불과했다. 가격을 고려했을 때 중짜보다 소짜를 시켜 먹는 게 더 나았다.

이번엔 경기 지역의 유명 중국집을 찾았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찹쌀 탕수육. 중짜와 대짜만 팔고 있었는데 중짜는 2만2천원, 대짜는 2만7천원이었다. 쫀득쫀득한 찹쌀 반죽과 고소한 고기의 맛이 압권이라 요새 인기가 절정이다. 역시 중짜와 대짜를 각기 다른 장소에서 배달시킨 뒤 개수를 세어봤다. 중짜는 515g, 대짜는 615g이었다. 무게는 100g 차이, 개수로 따지면 대짜가 고작 다섯 조각이 더 많았다. 충격적인 결과. 믿었던 찹쌀 탕수육 너마저. 중짜와 대짜가 5천원 차이였으니 대짜를 주문한 손님들은 탕수육 한 조각당 1천원씩을 더 내고 다섯 개 더 많은 대짜를 먹은 셈이다. 탕수육의 배신이었다. 중국집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양은 큰 차이 없는데 접시 차이가 나요.” 대학 시절 대짜를 시키고도 양이 부족했던 건 우리들의 먹성이 좋아서가 아니라 애초에 대짜와 중짜는 별 차이가 없었던 탓이 아닐까.

3 회는 무조건 특대?
바닷가에 놀러 가면 꼭 먹어줘야 하는 음식이 있다. 바로 회. 그 중에서도 펄떡펄떡 뛰는 싱싱한 광어를 잡아서 회로 먹는 맛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환희요, 기쁨이다. 쫀득쫀득한 식감 뒤로 향긋한 바다 냄새까지. 해물찜과 탕수육에 다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바닷가로 향했다. 그러곤 어느 횟집을 들러 광어회를 주문해보았다. 포장 기준으로 소짜는 2만5천원, 중짜는 3만원, 대짜는 5만8천원. 그런데 메뉴판엔 특대라는 생소한 사이즈도 있었다. 무려 6만8천원. 넷이서 실컷 먹으려면 특대를 시켜야 한다는 식당 사장님의 설득에 필자는 특대를 주문했고 다른 취재진은 대짜를 포장 주문했다. 각각 특대와 대짜를 들고 바닷가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특대를 포장한 봉지는 확실히 묵직했다. 그리고 눈으로 보더라도 대짜보다 훨씬 광어회의 양이 푸짐한 것 같았다. 무려 1만원이나 더 주고 산 보람이 느껴지는 것만 같아 왠지 뿌듯하기까지 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전자저울 위에 광어회를 각각 올렸다. 대짜는 435g. 대짜의 광어회 양이 생각보다 푸짐했다. 특대짜에 대한 기대감이 마치 파도치듯 일렁였다. ‘대짜가 이정도면 특대짜는 얼마나 많이 들어 있을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특대짜의 광어회를 저울 위에 올렸다. 저울의 눈금 바늘이 대짜의 양인 435g을 훌쩍 넘어가더니 일순간 멈췄다. 470g. 뭔가 이상했다. 500g은 훨씬 넘을 줄 알았는데, 저울의 문제는 아닌지 다시 한 번 특대짜의 무게를 재봤다. 역시 470g. 대짜와는 35g 차이. 고작 광어회 세 조각 차이가 전부였다. 무려 1만원을 더 주고 샀건만, 광어회 세 조각 차이라니. 분명히 눈으로 볼 때는 훨씬 많았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비결은 착시 현상에 있었다. 횟집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대짜나 특대짜나 똑같이 광어 한 마리예요. 다만 회를 가로로 썰어 놓으면 더 푸짐하게 보이지. 어떻게 썰어 담느냐의 차이지.” 내 1만원 돌려줘!

콩나물로 양을 부풀린 해물찜, 접시 크기로 대, 중, 소를 구분하는 탕수육, 착시 현상을 이용한 광어회…. 물론 음식점 모두가 이렇다고 일반화할 순 없겠지만, 즐겨 먹고 좋아하는 음식들에서 이렇게 배신감을 느끼게 될 줄 몰랐다. 물론 정직하게 대 ? 중 ? 소를 나누는 음식이 있긴 하다. 바로 뼈다귀 감자탕. 소, 중, 대 크기별로 대개 뼈 두 개씩 비교적 정확하게 차이가 났다. 앞으로 음식점에 가서 무조건 대짜를 시키라는 사장의 말에 현혹되지 마시라. 그리고 이렇게 물어보시라. “대짜는 중짜보다 탕수육이 정확히 몇 조각 더 들어가죠?”

김진
동아일보 기자로 채널 A 〈먹거리 X파일〉을 진행하며 많은 여성 팬을 확보하고 있다. 유해 식품, 음식에 관한 편법이나 불법은 그냥 지나치지 못해 직접 실험에 참여하거나 형사처럼 잠복근무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기획 김명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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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조윤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