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의 자유민주 신념, 박정희 경제개발 리더십… 한국의 기적 낳은 행운들 가난 탈피의 절박한 목표, 이를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인 제도와 지도력 등장 지금 한국은 목표 없이 방황, 사드 배치도 감정 문제가 돼… 각자 자기 역할 성찰할 때
조장옥 객원논설위원 한국경제학회 회장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대한민국의 성공 뒤에는 국민의 헌신적인 노력과 희생이 있었지만 행운이 따른 것도 사실이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끝난 이후 우리가 인센티브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택한 것은 커다란 행운이었다. 1946년 8월 13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군정청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70%가 사회주의를 찬성했고, 자본주의 14%, 공산주의 7%, 모름이 8%로 나타났다. 즉 당시의 대중은 자본주의보다는 사회주의를 압도적으로 선호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승만의 신념과 지도력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선택한 것은 큰 행운이었다고 아니 할 수 없다.
이승만의 치세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신생 국가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나라의 근본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확고하게 유지했다는 것은 평가해 마땅하다. 박정희의 리더십도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박정희가 장면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이어받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가난에서 탈피해야겠다는 나라의 긴급한 목표 앞에서 잘된 정책이나 계획이라면 자신이 무너뜨린 정부가 만든 것도 채택할 수 있는 포용력이 있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이 그로부터 출발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또한 행운이었다.
근래 대한민국이 아무런 목표 없이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무겁다. 아무리 주위를 돌아봐도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가 돼야 한다는 정연한 논리를 접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은 많으나 무엇을 하기 위해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다. 그저 이념에 집착하고 서로의 작은 흠집을 들추기에 여념이 없다. 심지어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성찰하지 않는다.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모르겠다.
선진국에 진입하는 것도 어렵지만 선진국을 유지하는 것은 더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선진국에 진입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그에 걸맞은 제도와 위엄(dignity)을 갖추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제도는 선진국으로서의 경제적 지위와 자유민주주의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에서 볼 수 있듯이 좋은 제도를 갖추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좋은 제도 없이 국가의 위엄을 획득하는 것은 더군다나 어렵다. 오죽했으면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나라의 위엄을 지키는 것을 정부의 핵심 과제 가운데 하나로 거론하였겠는가.
나라에 목표가 없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제도와 토론 그리고 과학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으로 귀결되고 국가의 위엄은 추락하고 있다. 최근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도 900명이 넘는 성주군 주민이 삭발할 정도로 감정적인 문제가 돼 버렸다. 반대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찬성과 반대가 어우러져서 과학적으로 문제를 구명하고 토론에 의해 결론에 도달하는 제도가 없다는 말이다. 우리의 생명을 방어하기 위한 조치마저도 적절한 절차에 의해 해결하는 기제가 없다는 것은 절망적이라고 생각된다.
국가의 목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때다. 그리고 그것을 중심으로 국정이 운영되고 국민은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의 역할을 성찰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