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감기’ 우울증 이기자]<下>‘마음 면역력’ 키우는 지자체들
5일 홀몸노인과 기초생활수급자가 주로 사는 경기 수원시 영통구의 한 영구임대 아파트 경로당에서 노인 30여 명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국내 유일 ‘노인 전담 정신 보건소’인 수원시노인건강증진센터가 생명사랑 프로그램의 하나로 매주 동네를 옮겨 다니며 실시하는 레크리에이션의 한 장면이다. 정신보건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앞사람의 어깨를 열심히 주무르던 우울증 환자 고모 씨(70)는 “처음엔 ‘이게 무슨 소용인가’ 생각했는데 박수 치고 노래를 부르다 보니 어느새 기분이 나아지고 약(항우울제)도 잊지 않고 먹게 됐다”고 했다.
○ 스마트밴드 보급해 숨어있는 환자 끌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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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는 전 씨처럼 자살 기도 위험이 높은 중증 우울증 환자들에게 스마트밴드(팔찌)를 지급했다. 환자가 스마트밴드를 차고 걸어 다니며 경로당이나 공원 등에 설치된 비컨(근거리무선장치)에 갖다 대면 이를 기록했다가 수개월에 한 번씩 운동 목표를 달성한 환자에게 금메달 스티커를 수여하는 방식이다. 우울증 환자 대부분이 집에만 틀어박혀 사람들을 만나려 하지 않지만, 대화 상대와 외출 시간을 늘리면 자연스럽게 증세를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전 씨는 “밴드를 받은 뒤 귀찮아도 자주 운동하고 경로당에도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센터는 2014년부터 스마트밴드 외에도 대학생 자원봉사자 등을 자살 고위험군 1000명과 일대일로 연결해 정기적으로 전화를 거는 사업도 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안부를 물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우울증이 악화될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에 따른 것이다. 수원시의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는 2010년 29명에서 2014년 23명으로 줄었고, 특히 65세 이상 자살자는 2014년 한 해 만에 44.3%나 감소했다. 센터장을 맡고 있는 홍창형 아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울증도 신체 질환처럼 평소 ‘마음 면역력’을 높이면 예방할 수 있기 때문에 환자가 아닌 사람을 대상으로도 행복 증진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우울증 환자 발굴-자살 위험군 관리 효과 톡톡
우울증 환자와 자살자가 동시에 줄어든 지역의 특징은 관할 기초단체가 우울증 환자 발굴과 자살 위험군 관리를 위한 다양한 정신보건사업을 벌여 왔다는 것이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는 인구 10만 명당 우울증 환자가 2010년 2283명에서 지난해 1157명으로 줄었고, 자살자는 2010년 33명에서 2014년 23명으로 줄었다. 경로당이나 빈집을 개조해 홀몸노인이 5명씩 모여서 살 수 있는 ‘공동생활가정’을 운영한 효과로 분석된다. 경기 화성시는 2010년부터 대중교통이 불편하고 정신건강 인프라가 열악한 농촌 마을을 ‘생명존중 그린마을’로 정해 상담사가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사업을 벌인 덕에 우울증 환자 비율과 자살률이 각각 15.4%, 22.2%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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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산 줄이자 다시 자살률 늘어
자살 예방 사업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다가 기초자치단체가 관련 예산을 삭감한 뒤 자살률이 다시 높아진 곳도 있다. 대전의 한 기초단체는 2013년 ‘자살 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고 관련 예산 5000만 원을 편성해 모든 행정부서가 자살 예방 사업에 뛰어들었다. 사회복지과는 노인을, 교육과학과는 청소년을, 자치행정과는 새터민을 각각 맡아 관리하는 방식이었다. 그 덕분인지 2010∼2012년 인구 10만 명당 연평균 24명이었던 자살자는 2013년 17명으로 줄어들었다. 보건소가 운영하는 ‘건강 100세 버스’를 활용해 우울증 위험군이 많은 곳을 찾아가 직접 검사를 벌인 덕에 같은 기간 우울증 환자 비율도 9.6% 줄었다. 하지만 이듬해 해당 기초단체는 관련 예산을 절반으로 줄였고, 자살자는 다시 22명으로 늘었다.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숨어있는 우울증 환자를 끌어내려면 장기적인 안목으로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데 보여 주기 식 ‘반짝’ 행정으로는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둘 수 없다”고 지적했다.
수원=조건희 becom@donga.com·김호경 기자 /신다은 인턴기자 연세대 국제학부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