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은 자국민 포로 유해수습 분주 오빠 소식 애타는 80대 여동생에 “정부가 나섰다” 전화 드릴날은…
조종엽·문화부
“아유, 아유, 아유…. 딱해라, 우리 오빠….”
박남조 할머니(83·충북 충주시)는 전화기 너머에서 울먹였다. 할머니의 오빠 박태일 씨(1927년생)는 1944년 관동군으로 끌려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일제 패망 뒤 소련의 포로가 돼 시베리아 크라스노야르스크의 수용소에서 1947년 12월 6일 사망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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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는 현지에 묻힌 자국민 포로 유해를 수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 크라스노야르스크 시청 측의 기록을 줄이면 이렇다.
“1994년 8월 일본 정부 관계자가 묘지를 방문했다. 1996년 일본 정부가 매장지를 조사하자는 청원서를 내 발굴이 시작됐다. 1998년 일본 정부가 매장지를 조사해 니콜라옙스크 묘지에서 유해를 찾았고, 화장해 일본으로 가져가서 도쿄 지도리가후치(무명용사 묘역)에 안장했다. 2000년 유족회 대표단이 방문해 묘지 3군데에 위령비를 세웠다. 2002년 사쿠라(벚나무) 묘목 110개를 기증했다. …”
여러 차례 제사를 지냈다는 내용도 있었다. 위령비에는 ‘준공 일본국 정부’라는 글씨가 선명했다.
러시아 사할린에서 발견된 억류 한인 관련 새 명부를 보도한 뒤 황당한 일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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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동원 피해자 유골 봉환의 1차 책임은 당연히 일본에 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우리 유족의 한을 내버려둘 것인가. 기자가 박 할머니에게 “우리 정부가 나섰다”는 전화를 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조종엽 문화부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