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국가비상사태’ 이후/조동주 특파원 이스탄불 르포]
한 노점상이 1일 터키 이스탄불 탁심광장에서 터키 국기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집회 용품을 진열해 놓고 있다. 그 뒤로 터키 정부가 국민을 광장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설치한 무료 급식소에 공짜 샌드위치를 받으려는 이들의 줄이 이어져 있다. 이스탄불=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조동주 특파원
1일 터키 이스탄불 탁심광장 앞 아타튀르크 문화센터 건물 전체를 뒤덮은 초대형 현수막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터키 시민운동의 상징 탁심광장은 쿠데타 이후 국민에게 ‘민주주의를 지켜냈다’는 자긍심과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한 선전으로 가득했다. 광장에는 100개가 넘는 빨간색 터키 깃발이 나부꼈다. 지난달 30일부터는 쿠데타를 저지하려다 사망한 137명의 이름을 검은 배경에 하얀 글씨로 적은 대형 간판이 내걸렸다. 그 앞에는 조문록에 글을 남기려는 시민 30여 명이 줄지어 서 있었다. ‘국민이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며 쿠데타 이후 소감을 써 달라고 온라인 사이트를 안내하는 간판도 눈에 띄었다.
터키 군부 쿠데타가 ‘6시간 천하’로 끝난 지 4일 현재 20일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탁심광장에서는 매일 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을 지지하는 친정부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기자가 쿠데타 진압 다음 날인 지난달 17일 밤 이곳을 찾았을 때보다는 군중 수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당시엔 광장을 뒤덮은 인파가 수천 명이었지만 1일 새벽에는 수백 명에 그쳤다. 똑같은 집회가 장기화되자 국민이 피로를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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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비상사태 선포 이후 대통령 명령으로 경찰이 수상한 자의 휴대전화를 마음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으면서 일부 반(反)정부파는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외출하기도 했다. 제1야당 공화인민당(CHP) 지지자 살렌 씨(24·여)는 “친구들과 주고받은 휴대전화 메시지를 보고 경찰이 나를 (쿠데타 배후로 지목된) 펫훌라흐 귈렌 지지자로 몰아갈까봐 외출할 때는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나온다”고 말했다.
한 터키 교민은 터키 사람들이 국내 정세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물어봐 달라는 기자의 부탁에 “거리에 사복경찰이 많아 터키어를 하는 동양인이 쿠데타 이후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물어본다면 스파이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며 한마디로 거절했다. 그는 이전에 가깝게 지냈던 터키인들과도 정치에 대한 이야기만큼은 극도로 꺼리고 있다. 최근 각계각층으로 이어지고 있는 귈렌파 숙청에 국민의 두려움이 고조되자 경찰을 사칭하며 ‘귈렌 지지자 명단에 올랐는데 돈을 주면 이름을 빼주겠다’는 사기도 극성을 부린다.
최근 터키 아타튀르크 국제공항 등에 테러가 잇따르는 데 이어 쿠데타까지 벌어지자 터키의 주 수입원인 관광산업이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한국인 관광객 정모 씨(30)는 3일 찾은 열기구 관광지 카파도키아에서 18인승짜리 열기구를 4명이서 탔다. 정 씨는 “원래 이맘때가 관광 최성수기여서 열기구가 한 번에 150대쯤 떴다는데 지금은 30대 정도밖에 없었다”며 “관광객이 급감해 카파도키아 레스토랑은 텅텅 비어 있었다”고 전했다.
한국인 관광객도 지난해 같은 시기 대비 80%가 줄었다. 하나투어 측은 “7, 8월에 예정돼 있던 터키 여행 500건 중 100여 건이 쿠데타 이후 취소됐다”며 “쿠데타가 진압됐더라도 여전히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에 수요가 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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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