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소비자경제부 차장
잠을 자야 뇌가 쉴 수 있듯이 심신도 휴식을 취해야 1년을 탈 없이 지낼 수 있다. 그래서 모처럼 맞는 휴가는 축복일 뿐 아니라 꼭 지켜야 할 의무이기도 하다. 휴가를 재충전의 시간이라 부르는 게 빈말이 아니다. 휴가를 망치면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된다.
지난주에 그런 휴가를 보냈다. 갑자기 해결해야 할 일이 생겨버렸다. 내 자식의 일이니 누구한테 맡길 수도 없었다. 주민센터와 구청으로 뛰어다녔고, 서류를 들고 이곳저곳을 찾아다녔다. 나도 모르게 “이게 무슨 휴가야”라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주인아주머니는 네 가족이 먹고 남을 만큼 넉넉히 조개를 내어줬다. 물을 찍찍 뿜는 조개를 불판에 올려놓자 쩍 소리를 내며 입을 벌렸다. 아들 녀석이 재미있다며 활짝 웃었다. 밤이 되자 바로 코앞에서 철썩철썩 파도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주변이 완전히 어두워진 후에야 서울로 돌아왔다. 하루짜리 유쾌한 휴가였다.
다음 날 방송에서 인천공항 출국장의 풍경을 봤다. 해외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언젠가 우리 가족도 저들처럼 긴 줄을 선 끝에 출국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휴가를 어디에서 보낼 것이냐는 각자가 결정할 일이다. 이국적인 추억을 만들려고 해외여행을 떠나는 이들을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국내 여행에 장점이 많다는 점은 꼭 강조하고 싶다. 경비가 적게 들고, 훌쩍 떠났다가 돌아오기도 수월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국내 여행을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국내 경기를 살리는 데 보탬이 된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931만 명이 해외로 여행을 떠났다. 이들 중 10%만 국내에서 여행을 즐겼다면 4조2000억 원의 내수가 창출되고 5만4000여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세계관광협회(WTTC)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관광산업이 국내총생산(GDP)에 기여한 비율은 5.1%로, 세계 평균인 9.8%보다 낮다. WTTC 분석에 따르면 관광업의 고용창출 효과는 금융업의 1.5배, 화학제조업의 3배 정도다.
아 참. 국내 여행의 또 다른 장점 하나. 넉넉한 인심은 덤이다. 바닷가 식당의 주인아주머니는 구워내기가 무섭게 먹어치우는 내 아이들을 보더니 신선한 조개로 빈 접시를 다시 채워줬다. 굳이 휴가가 아니더라도 조만간 또 그 식당을 찾아야겠다.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먹었던 조개구이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김상훈 소비자경제부 차장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