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앳킨슨 호넬의 ‘수련연못’.
화가는 아이들을 즐겨 다뤘습니다. 특히 ‘수련 연못’에서처럼 여자아이들을 많이 그렸지요. 산업화가 확산되던 시기, 유럽 사회는 이상적 가정과 순결한 소녀를 동경했습니다. 꼬마 숙녀를 완벽한 가정의 증표로 생각했지요. 장차 집안을 이끌어갈 미래의 안주인으로 여겨졌어요. 화가의 그림 속 소녀들은 목가적 풍경, 안전한 세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아이들 세계에는 늘 푸른 바다가 일렁이고, 예쁜 꽃들이 만개해 있습니다. 백조가 노니는 호수가 지척이고, 시원한 나무 그늘도 빠지지 않습니다.
그림 속 싱그러운 세상에서 연못의 물이 아이들과 함께 찰랑이고, 아이들의 즐거움이 초록 숲에 깃들었습니다. 자연과 인간은 서로의 영역을 명확히 가르지 않은 채 소박하게 공존합니다. 특이한 제작 기법이 낳은 효과입니다. 화가는 캔버스에 물감을 두껍게 바른 후 조금씩 벗겨 내며 그림을 완성했지요. 그 과정에서 형태와 색깔은 매끈함과 균일함 대신 연결성과 리듬감을 확보했어요. 입체감과 공간감은 축소되는 한편 평면성과 장식성은 배가되었지요.
35년 지기 친구가 미국에서 왔습니다. 약속 장소로 가는 길, 추억의 조각들이 빠르게 과거를 직조해 나갔습니다. 불완전한 기억 속 시간의 초상은 군데군데 형태가 불분명했습니다. 현재라는 종이 위 기억의 풍경은 이곳저곳 색칠도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그 끊김과 성김을 잇고, 채우려 애쓰지 않았습니다. 화가의 그림처럼 이 세상에는 평범한 순간을 동화의 한 장면처럼, 한 편의 시처럼 만들어 주는 들쭉날쭉함과 우둘투둘함도 있으니까요.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