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 철학자·영산대 교수
이것은 사서삼경의 하나인 ‘대학(大學)’에서 따온 한자성어 가운데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말인 것 같습니다. 원래 뜻은 깊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많이 알려진 만큼 편협하게 해석되거나 오해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통상 글자의 순서를 따라 ‘먼저 자기 자신을 닦고 집안을 가지런하게 한 다음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한다’라고 해석합니다. 이는 자신을 수양하고 세상을 다스린다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순서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단계성의 개념’으로만 받아들이면 많은 것을 놓치게 됩니다. 더구나 철저하게 단계적으로 생각하면 이 말의 뜻 자체가 소멸하겠지요. 먼저 수신을 이룬 다음에 제가를 한다고 하면 말입니다. 평생토록 노력해도 수신의 완성이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초인이나 신선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제가의 완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신이 부족한 상태에서 가정을 이루고 돌보며, 제가가 부족한 상태에서 사회에 진출하고 치국의 일에도 참여하는 것이 삶입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자꾸 단계적으로만 인식하는 데에는 또 다른 세속적 이유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설픈 ‘제왕학’이나 ‘출세’의 관점에서 치국평천하를 인생의 목표로 삼기 때문이 아닐까 의심해 봅니다. 여기에는 크고 작은 권력에의 의지 같은 것도 개입해 있을 법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지, 권력자가 되는 일이 더 중요하지 않습니다. 또한 권력은 ‘뭔가 해낼 수 있는 힘’이지 ‘뭐든 할 수 있는 힘’이 아닙니다. 수신은 권력 행사에 분별력을 제공합니다.
평천하를 이룬 사람의 최종 목표는 오히려 ‘사람 되기’, 즉 수신일지 모릅니다. 치국평천하의 경험을 지혜롭게 자기 수양에 피드백하면 수신은 완성의 차원에 가까이 갈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권력의 자리에서 현명하게 행동하다 지혜롭게 물러나는 경우가 있고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시각은 종종 의식을 기만합니다. 그래서 ‘평천하·치국·제가·수신’이라고 써보았습니다. 수기치인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은 나름대로의 가치와 의미를 지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연계되어 있을 뿐 어떤 ‘큰’ 목표에 종속적으로 통합되어 있지 않습니다.
김용석 철학자·영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