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스페인 내셔널 오케스트라와 협연 갖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9월 29일 리사이틀 앞두고, 20일까지 관객 신청곡 받아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사진을 찍기 전 아내 윤정희 씨는 손수 남편의 머리를 빗겨 주고 옷매무새를 만져주었다. 사진 촬영이 시작되자 그의 시선은 줄곧 윤 씨를 향해 있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의외의 대답이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71)가 누구인가. ‘건반 위의 구도자’라 불리며 여러 작곡가들의 전곡을 공부하면서 수많은 공연과 녹음을 한 연주인이다. 어느 하나에 꽂히면 집요하게 파고들며 음악 하나만을 위해 살아왔다.
8일 서울 일신홀에서 만난 그는 음악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고 밝혔다. “예전에는 무언가 해야겠다는 촉박함 같은 것이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음악은 제 싸움의 대상이었죠. 여전히 좋은 연주를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이제는 음악 자체를 즐기려고 해요. 이런 생각을 갖게 되기까지 너무 오래 걸린 것 같아요.”
그는 피아니스트가 아니면 사진작가가 됐을 것이라고 종종 말할 정도로 사진에 애착이 많다. 좀 더 나이가 들면 사진으로 개인전 개최도 고려해 보겠다고 할 정도다. 음악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한 만큼 사진을 찍는 자세도 변했다. “예전에는 구도를 잡고 충분히 생각을 한 뒤에 사진을 찍었다면 이제는 그때그때 느낌대로 순간을 찍는 것을 좋아해요.”
사진 못지않게 상당한 그림 실력을 자랑하는 그는 많은 그림들을 그렸지만 아내 윤정희 씨를 단 한 번도 그려보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유를 묻자 한참 고민 끝에 입을 뗐다. “너무 많은 것을 표현하고 싶어서 그런 것 같아요.” 옆에 있던 윤 씨가 빙그레 웃었다.
백건우는 “과거를 돌아보기 싫어서” 자신의 앨범을 잘 듣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전히 시간을 내서 듣는 편은 아니다. 앨범을 듣지 않다 보니 생긴 몇 년 전의 일화도 있다. “차를 타고 가다 라디오에서 음악이 나오는데 잘 치면서도 저와 비슷한 곳이 있는 거예요. ‘누가 연주했을까’ 궁금해하며 끝까지 들었는데 DJ가 ‘백건우’라며 연주자를 소개하는 거예요. 하하. 내가 연주한 것도 몰라본 거죠.”
매해 50회 넘는 공연을 소화하는 그는 요즘도 공연 전 떨린다고 고백했다. “적당히 연주를 한다면 떨 필요가 없죠. 그런데 전 너무 잘하고 싶어서, 목표가 너무 높다 보니 매 공연마다 떨려요. 아직도 부족한가 봐요(웃음).” 02-599-5743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