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심성 국책사업에 멍드는 재정
정부 국책사업을 경제적 타당성만 보고 진행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불과 수개월 사이에 조 단위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자칫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진행 중인 사업조차 예산 집행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을 고려할 때 새로운 사업을 벌이기보다 시급성을 꼼꼼히 따지며 ‘교통정리’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국책사업 추진에 ‘쌓여가는 계산서’
하지만 정부가 최근 수개월 사이 대규모 국책사업 추진 계획을 잇달아 쏟아내면서 중장기 지출 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할 처지에 놓였다. 무상보육 등 복지 지출 대부분은 법에 따라 집행하는 의무지출이라 정부가 손댈 여지가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SOC 지출이 포함된 재량지출마저 늘어난다면 나랏빚 증가 속도는 더욱 빨라질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국가부채 증가도 우려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현 상황대로라도 국가부채는 올해 말에 644조3000억 원, 내년 말에는 700조9000억 원까지 늘어난다. 여기에 대규모 SOC 사업과 정치권의 선심성 복지 사업 몇 개만 더 얹히면 당장 수십조 원의 빚이 추가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최근 발표된 대형 사업들이 대부분 차기 정부에서 추진된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기재부 당국자는 “김해 신공항을 포함해 최근 나온 SOC에 대해서는 내년에 100억 원 미만의 설계비 말고 반영할 부분이 극히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생색은 현 정부가 내고 계산서는 차기 정부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구조다.
○ “예산 지출 시급성 꼼꼼히 따져야”
일각에서는 현재 추진하고 있는 SOC 사업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추가로 대규모 국책사업이 늘어나면 예산 관리가 더욱 방만해질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한다. 이 때문에 어차피 해야 할 사업이라면 우선순위를 꼼꼼히 따져 중장기 지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밖에 정부가 추진하는 SOC 사업들 중에는 정부가 우선순위를 제대로 따지지 않고 이런저런 이해관계에 따라 예산부터 편성한 사례들이 적지 않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대구순환고속도로 등 10개 고속도로 건설 사업에 추경까지 하며 2조3481억 원을 배정했지만 4341억 원을 못 쓰고 남겼다. 포항∼삼척 철도 건설 등 12개 일반철도 건설사업에도 추경을 포함해 3조5907억 원이 책정됐지만 실제 집행금액은 2조7246억 원에 머물렀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 교수는 “예산 편성 과정부터 시급성을 따져 꼭 필요한 사업부터 돈을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손영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