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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 한때 月30~40점 多作… 작품 관리안돼 위조범들 “표적”

입력 | 2016-07-04 03:00:00

[심층탐사기획/프리미엄 리포트/위작에 멍드는 미술계]‘위작 진실공방’ 휩싸인 이우환 화백 작품




“가짜 감정서가 붙어 있든, 안료 성분이 어떻게 나왔든, 위조범이 자백을 했든 말든 그런 건 난 모르겠다.” 지난주 경찰 조사를 받은 이우환 작가는 위작 의혹 그림을 살펴본 뒤 “유통된 그림 중에서 내 눈으로 본 모든 그림은 진품”이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DB

“1978, 79년에 한창 많이 그릴 때는 한 달에 30∼40점씩 그렸다. 전시를 했어도 도록에 실리지 않은 작품이 허다하다. 화랑에 팔았는데 돈 못 받고 어디론가 없어진 경우도 적잖다. 서명이나 일련번호는 내가 직접 안 넣고 화랑에 맡긴 일이 잦았다.”

오랜 위작 논란에 휩싸인 화가 이우환 씨(80)가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왜 유독 이 씨의 그림이 첨예한 ‘위작 진실 공방’에 휘말린 걸까.

○ 이우환 작품에 위작 시비가 잦은 이유

이 씨는 2005년부터 10년간 국내 14개 경매사 총 낙찰액 1위(약 712억 원)를 차지한 최고 인기 작가다. 그런데 스스로 밝혔듯 가장 활발하게 작품을 제작한 시기의 유통 경로에 미심쩍은 구석이 많다. 2년간 수백 점을 그렸지만 제작과 전시 기록이 불분명하고, 작품 행적이 묘연해지는 상황이 자주 벌어졌고, 서명과 일련번호 표기마저 때로 남에게 맡겼다. 위조범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표적이었다.

이 씨 그림을 위조한 혐의로 체포된 화상(畵商) 현모 씨(66)는 경찰 조사에서 “부산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한 골동품상 이모 씨(68)가 2011년 ‘이우환 그림을 애호하는 일본의 모 그룹 회장에게 위작을 만들어 팔자’며 접근해 왔다”고 진술했다. 현 씨는 그림 위조 기술자인 다른 이모 씨(39)와 함께 경기 남양주시 작업실에서 위작 50여 점을 제작했다고 자백했다. 이들은 위작에 1978, 1979년 작품으로 가짜 서명과 일련번호를 넣고 가짜 감정서도 만들었다.

경찰에 꼬리가 밟힌 건 그림을 판 이익의 배분 다툼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 씨는 2013년 골동품상 이 씨와 그 아들에게 “수십억 원의 판매 대금을 독식하고 약속한 대가(절반)를 주지 않는다”는 항의 문서를 보냈다가 수사망에 포착됐다.

일본의 애인 집으로 도망갔다가 그곳까지 쫓아온 한국 경찰에게 붙잡힌 현 씨는 순순히 범행 사실을 인정했다. 경찰이 확보한 물증은 지난해 서울 A화랑과 동대문구 고미술상가 등의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위작 의심 그림 수십 점이다. 현 씨는 경찰이 제시한 압수품 중 4점에 대해 “틀림없이 내가 위조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지난해 12월 K옥션 정기 경매에서 이우환 화백의 1978년작 ‘점으로부터 No. 780217’로 등록돼 4억9000만 원에 낙찰된 그림(위 사진). 재판을 받고 있는 위조범 현모 씨는 이 그림에 첨부된 감정서를 자신이 만들었다고 자백했다. 동아일보DB

그러나 지난주 두 차례 경찰 조사를 받은 이우환 씨는 해당 그림을 살펴본 뒤 “위작이 아니다. 내가 그린 진품이다”라고 주장했다. “내가 위조했다. 처벌받겠다”고 자백한 범인이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데도 작가는 “이 그림은 물론이고 유통된 작품 중 내가 눈으로 확인한 것 중에는 단 한 점의 위작도 없다”고 말한 것이다.

모순된 상황이지만 미술계에서는 “그럴 줄 알았다. 전혀 놀랍지 않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여기에서 이우환 씨와 미술계에서 ‘이우환 전문화랑’으로 알려진 서울 B화랑의 관계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 씨는 “1970년대 후반부터 B화랑이 내 작품을 열심히 취급했다. ‘내 화랑’이라 생각해 안심하고 뭐든지, 감정까지 맡겼다”고 말했다.

2012년 위작 논란이 빈발하자 의심스러운 그림을 모아 작가와 감정단이 함께 검토해 감정서를 발급한 장소도 B화랑이었다. 2013년 초 감정단과 작가 의견이 대립해 합의를 보지 못한 뒤 이 모임은 사라졌다. “그림을 감정하는 전문가가 한국에는 너무 부족하다”고 불만을 토로한 이 씨는 ‘B화랑의 감정은 믿을 수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우환 씨 그림 위작을 대량 유통시킨 혐의로 압수수색을 받은 A화랑은 2012년 한 개인 컬렉터에게 이 씨 작품이라며 그림 한 장을 4억 원에 판매했다. 이 그림에는 B화랑의 주선으로 발급된 친필 작가확인서가 붙어 있었다. 경찰이 ‘확실한 위작’으로 제시한 4점 중 하나가 이 그림이다. 그러나 이우환 씨는 그림을 확인한 뒤 “작가확인서는 내가 작성한 것이 맞고, 이 그림은 분명히 내가 그린 진품”이라고 말했다.

○ 미술계 위작은 ‘유통’이 만든다


만약 경찰이 위작이라 결론내린 그림에 대해 이우환 씨가 ‘내가 그린 것이 아니다’라고 동의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작가 이 씨는 친필 작가확인서를 발급한 그림의 진위 판정 오류에 대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오랜 기간 쌓아온 명망과 신뢰도에 회복 불능의 치명상을 입게 된다. 이 씨는 기자회견 말미 “해외 거래에서 이미 꽤 큰 타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 미술평론가는 “이른바 ‘큰손’이라 불리는 개인 컬렉터들은 위작 거래를 경험하고도 못 본 척 묵인하는 경우가 적잖다”고 했다. 수억 원대 그림을 취미로 수집하면서 ‘일부의 오류’는 감수하는 편이 낫다는 얘기다. 이미 거래된 그림의 진위를 따져봤자 번거롭게 구설에 오르내릴 위험만 있을 뿐 딱히 득 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유통 경로가 불분명한 위작이 신용도 높은 국공립 미술관에까지 걸리는 사태가 발생한다. 한 공립 미술관 전임 큐레이터는 “얼마 전 국내 유수 미술관이 한 개인 컬렉터가 수십 년 동안 창고에서 꺼내지 않은 유명 작품을 걸었다. 전화로 확인하니 역시 ‘반출한 적 없다’는 답이 왔다. 미술관에 통보해 바로 내렸지만 그 위작이 어떻게 처리됐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김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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