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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대법관 이념성향’ 오른쪽 끝 고영한, 왼쪽 끝엔 이인복

입력 | 2016-06-28 03:00:00

[대법원 판결성향지수 첫 분석]前現 대법관 35명 이념지수 보니




“남성적 감수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여성적 감수성으로 소수를 이해하면서 일해 나가겠다.”

2004년 연공서열을 깨고 첫 여성 대법관으로 파격적으로 발탁된 김영란 전 대법관은 지명 직후 이렇게 말했다. 김 전 대법관은 동아일보가 이용훈·양승태 대법원장 재임 시절 대법원장과 대법관 35명의 판결 성향을 분석한 결과 가장 진보적 성향을 드러냈다. 자신의 약속을 지킨 셈이다. 그와 정반대편에는 박근혜 정부 때 국무총리 후보와 새누리당 국회의원 후보 공천까지 받았던 검사 출신 안대희 전 대법관이 있었다.

미국에서는 올해 2월 타계한 앤터닌 스캘리아 전 미국 연방대법관이 보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이 진보를 각각 대표하는 아이콘이었다. ‘한국의 긴즈버그’가 김 전 대법관이라면 ‘한국의 스캘리아’는 안 전 대법관인 셈이다.


○ 진보 이인복 후임, 대법원 진로에 영향

본보 분석 결과 현직 대법관 중에는 이인복 이상훈 대법관이 대표적 진보, 고영한 김창석 대법관이 대표적인 보수로 나타났다.

진보를 왼쪽, 보수를 오른쪽에 두는 스펙트럼에 분석 대상 35명 전원을 나열해 가장 진보(김영란)를 1위, 가장 보수(안대희)를 35위로 표시할 때 현직 14명(박병대 법원행정처장 포함) 중에서는 이인복 이상훈 김신 대법관이 각각 10위, 11위, 13위였다. 반면 보수 성향으로는 고영한 김창석 박병대 대법관이 ‘보수 챔피언’인 안대희 전 대법관의 바로 왼쪽인 34위, 33위, 32위에 위치했다. 김용덕 대법관과 양승태 대법원장은 각각 29위, 28위, 조희대 대법관은 23위였다.

재미있는 것은 권순일 박보영 박상옥 이기택 김소영 등 5명의 대법관이다. 이들은 스펙트럼의 중간쯤인 15∼19위에 차례대로 집중돼 있었다. 판결 성향만으로 보면 이 5명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캐스팅보트를 쥔 ‘스윙보터(부동층)’로 분류될 수 있는 것이다.

현직 가운데 가장 진보적으로 평가된 이인복 대법관이 올 9월 1월 임기 만료로 물러나게 되면서 후임 대법관이 누구냐에 따라 향후 대법원의 방향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그의 성향에 따라 대법원 내 ‘진보-보수’ 균형과 다양화 경향이 계속될지, 그 반대일지 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인복 대법관 퇴임 후에도 진보 성향의 이상훈 대법관과 보수 성향의 박병대 대법관이 각각 내년 2월과 6월에 퇴임해 양 대법원장의 재임 중 마지막 제청 3석의 향배가 주목된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는 다음 달 6일까지 이인복 대법관 후임 심사 대상자 관련 의견을 수렴한 뒤 3배수의 후보자 명단을 양 대법원장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현직 진보 1, 2위인 이인복 이상훈 대법관은 한명숙 이석기 사건에서 소수의견을 내는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서 함께 반대 의견을 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시국선언 같은 형사사건뿐 아니라 광우병 보도, 통상임금 사건에서도 소수의견에 뜻을 모았다. 이들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면서도 임금 소급 청구는 제한한 판결 때 진보 3위인 김신 대법관과 함께 “다수의견의 논리가 너무 낯설어 당혹감마저 든다. 거듭 살펴도 합리성을 찾을 수 없다”고 반박해 화제가 됐다.

현직 보수 1위인 고영한 대법관은 ‘진보 3인방’(이인복 이상훈 김신 대법관)이 반대 의견을 냈던 통상임금 사건의 주심이었다. 그는 임금협상 과정에서의 ‘신의성실 원칙’을 강조해 임금 소급분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다수의견을 이끌어 사측에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에서 현직 보수 2위인 김창석 대법관은 12명의 대법관이 인정했던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성을 홀로 부인해 가장 보수적인 판결을 내렸다.

박병대 대법관은 과거사 사건 배상 문제에서 엄격한 판결을 내렸다. 2013년 5월 주심을 맡은 사건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희생자 확인을 한 사실만으로 국가가 바로 유족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라는 판결을 이끌었다.


○ 김영란 등 ‘진보 5인방’ 가장 왼쪽

대법관 35명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한 김영란 전수안 박시환 이홍훈 김지형 전 대법관은 이번 분석에서 각각 진보 1, 2, 3, 4, 6위를 차지했다. 이 대법관 5명은 전원합의체 사건에서 서로 의견을 교환하며 기본권과 소수자 보호에 한목소리를 내는 일이 많았다. 5명이 함께 대법원에 몸담았던 2006년 7월부터 2010년 8월까지 4년간 합의에 공동 참여한 65건의 사건 중 41건에서 같은 의견을 냈다.

국가보안법 사건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서 이 5명의 존재감은 특히 두드러졌다. 남북공동실천연대 사건 때 반대 의견 5명 가운데 박시환 김지형 이홍훈 전수안 전 대법관은 이적단체성을 부인했고 김영란 전 대법관은 이적단체성은 인정했지만 이적표현물 소지만으로 이적행위로 볼 수 없다고 봤다. 박 전 대법관은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볼 수 없다는 의견을 덧붙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수차례 방북한 혐의로 기소된 송두율 교수 사건에서 박시환 전수안 김지형 전 대법관은 “국가보안법상 탈출죄가 안 된다”는 소수 의견을 냈다.

안대희 전 대법관은 35명 중 가장 보수적인 판결 성향을 띤 것으로 나타났다. 대검찰청 중수부장 출신인 안 대법관은 2012년 전교조 시국선언에 대해 “교육공무원들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며 유죄 판단을 했다. 같은 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군 복무 중 자살과 직무수행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으면 국가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전향적 판결을 할 때는 “자살은 자유로운 의지에 따른 것”이라며 반대 의견을 냈다. 그는 2010년 학내 종교자유를 주장하다 퇴학당한 강의석 씨가 학교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의 상고심에서 강 씨의 손을 들어준 다수 의견과 달리 “종교단체가 설립한 학교가 종교 교육을 할 자유는 헌법이 보장한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신동진 shine@donga.com·권오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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