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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24>불길에 휩싸인 별밤

입력 | 2016-06-21 03:00:00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별이 너무 크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별이 빛나는 밤’을 실패작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림 속 별 크기에 큰 시비가 붙은 적은 없었습니다. 풍경 전체가 뿜어내는 엄청난 흡인력 때문이겠지요.

화가가 못마땅하게 여긴 그림은 또 다른 예술에 영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돈 매클레인 노래 ‘빈센트’와 폴 달리오 감독 영화 ‘사랑에 미치다’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림을 제작할 무렵 상황은 음악처럼 감미롭지도, 영상처럼 낭만적이지도 않았습니다. 당시는 화가 최악의 정신적 혼란기였습니다. 풍경은 생레미에 위치한 정신병원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착란과 발작으로 불안정했던 6월 어느 새벽이었습니다. 화가는 정신병원 창밖 너머 세상을 캔버스에 담았습니다. 특유의 상상력도 동원했지요. 캔버스 왼쪽에 하늘 높이 솟은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선으로 화가를 매료시켰던 나무입니다. 오른쪽으로 올리브 나무숲 인근에는 구릉과 마을 지붕이 물결처럼 펼쳐집니다. 하늘에서 과장되게 빛나는 그믐달이 이 모든 것을 비추고 있습니다.

자해 소동과 정신 치료로 삶이 피폐해지기 전부터 화가는 별밤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습니다. 광채를 지닌 별, 차고 기우는 달을 보며 꿈을 꾸었지요. 분홍색과 초록색 별빛과 시골 여관 창에서 새어 나오는 주황색 불빛에 마음을 빼앗겼어요. 지도에 표시된 마을처럼 하늘에 떠 있는 별에 다가갈 수 없어 애를 태웠습니다. 그림의 출발은 닿을 수 없는 세계를 향한 상처받은 인간의 동경과 고뇌입니다. 그럼에도 화가의 번민을 두꺼운 마티에르와 요동치는 선으로 표현한 풍경은 실로 아름답기만 합니다.

노숙인 인문학이 8주 일정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색깔을 주제로 강의하던 중 풍경 밑그림 채색 시간을 가졌습니다. 원작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수업 내용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여백을 색칠하도록 권했습니다. 나무의 형태가 문제였을까요. 그림 속 사이프러스 나무 상당수가 빨간색으로 채워졌습니다. 치솟는 불길로 보였던 것이지요. 그중 전체를 붉게 칠한 완성작도 있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그림을 그린다. 동심으로 돌아온 것 같다. 묻기도 전에 벅찬 감회를 해맑게 밝혔던 수강생 것이었습니다. 그림에 관해 설명을 부탁하자 다 불타버렸답니다. 건질 것이 없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착잡했습니다. 내 마음속 서정적 풍경 한 점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서운함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