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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물든 원양어선… 베트남 선원이 한국인 선장-기관장 살해

입력 | 2016-06-21 03:00:00

인도양서 또 ‘선상살인’




인도양에서 참치잡이를 하던 한국 국적의 원양어선에서 20일(현지 시간) 한국인 선장과 기관장이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현재로선 이 배에 타고 있던 베트남 국적 선원 2명이 술을 마신 뒤 우발적으로 일으킨 범행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민안전처 해양경비안전본부는 정확한 조사를 위해 현지에 수사팀을 급파해 용의자를 한국으로 데려올 계획이다.


○ 양주 2병 나눠 마신 뒤 범행 추정


부산 광동해운 소속 광현803호(138t급)에 타고 있던 베트남인 선원 A 씨(32)와 B 씨(32)는 이날 오전 2시경 인도양 세이셸 군도 인근 해상에서 한국인 선장 양모 씨(43)와 기관장 강모 씨(42)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이 배에 타고 있던 인도네시아인 항해사가 양 씨와 강 씨가 피를 흘리고 죽어 있는 것을 보고 한국인 항해사 이모 씨(50)에게 알리면서 사건이 외부로 전해졌다. 용의자들은 현재 선실에 감금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중 1명은 손에 고기를 잡을 때 쓰는 길이 약 30cm의 칼을 들고 있었고 이 씨가 칼을 뺏었다고 한다.

A, B 씨는 범행 전 동료 선원들과 양주 2병 등을 나눠 마신 것으로 알려졌다. 광현803호에는 한국인 선원 3명과 베트남인 선원 7명, 인도네시아인 선원 8명 등 총 18명이 타고 있었다. 양주 2병은 양 씨가 수고한 선원들에게 격려 차원에서 준 것으로 전해졌다.

해경 당국은 일단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저지른 사건으로 보고 있다. 부산 해양경비안전서 이광진 해양수사정보과장은 이날 사건 브리핑에서 “다른 선원들의 동참이 없었고 선박이 세이셸 군도 빅토리아 항구로 문제없이 가고 있는 점으로 미뤄 볼 때 배에서 반란이 일어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부산 해경은 전담 수사본부를 구성하고 21일 현지에 수사팀 7명을 보낼 계획이다. 해경 관계자는 “현지에서 정확한 범행동기와 다른 선원들의 공모 여부도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현803호는 지난해 2월 11일 부산 사하구 감천항에서 광현801호, 광현802호와 함께 출항했다. 이 배는 올 8월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나머지 두 척의 선박은 광현803호와 550km 정도 떨어진 해상에서 정상 조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선장 된 뒤 첫 항해였는데 마지막이 될 줄이야”


살해당한 선장의 형 양모 씨(45)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충격을 받고 쓰러지실 것 같아 치매와 고혈압을 앓고 계신 어머니께는 사실을 말씀드리지 못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양 씨는 “동생의 이번 출항은 선장이 되고 난 뒤 첫 항해였다. 8월에 선박 수리 차 들른다고 해서 아버지 제삿날에 맞춰 오라고 했었는데 이렇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며 울먹였다.

유족들도 수사팀과 같이 세이셸 빅토리아 항구로 갈 예정이다. 외교부는 장례 절차 지원 등 유가족에 대한 영사지원을 할 예정이다. 또 해경과 공조해 주에티오피아 대사관을 통해 세이셸 당국과 관련 사법 절차 진행에 필요한 사항을 협의해 나갈 계획이다.

김영도 광동해운 대표이사는 20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해 당혹스럽다”며 “사고 전에 선내 동요나 선원과의 마찰 등에 대해 전혀 보고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평소 외국인 선원들이 대체적으로 순하고 협조적인 것으로 들었다”며 “사고 이후 선원들의 추가 동요 없이 원만하게 이동 중이며 인근 두 척의 선박에도 광현803호와 수시로 교신하면서 안전에 만전을 다해 달라고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광현803호는 약 4일 뒤 빅토리아 항구에 입항할 예정이다. 해경 당국은 위성전화를 통해 이 씨에게서 배 상황을 전해 듣고 있다.


○ ‘고립 위험’ 범죄 불안 상존하는 선상


바다 위 선박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은 고립된 곳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외부에서 바로 알 수 없다.

18년간 원양어선에서 일했다는 C 씨는 “이번 사건은 다른 배에서도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C 씨에 따르면 원양 선사 업계에서는 베트남인 선원들을 기피하는 현상이 지배적이다. 그는 “베트남인 선원들은 동양인치고는 일을 잘하는 편이지만 자존심이 세고 다혈질이어서 사고 위험을 안고 있다”고 했다. 반면 인도네시아인 선원들은 성격이 온순해 원양업계에선 장기 출항 시 이들의 비율을 적절히 섞고 있다고 한다. 이번 사건의 용의자인 베트남인 선원 2명도 술을 마시면 다혈질로 성격이 변해 다른 선원들이 같이 술자리를 하기를 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성택 neone@donga.com / 부산=강성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