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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자의 생각돋보기]얼굴성(性)

입력 | 2016-06-18 03:00:00


현생 인류의 진화. 동아일보DB

인류학적 측면에서 얼굴을 한번 생각해 보자. 인류가 네 발 짐승에서부터 두 발로 일어나 직립 동물이 된 것은 도구의 제작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도구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두 손이 자유롭게 해방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직립해야 했다. 직립하여 손이 자유롭게 되자 인간은 손으로 먹이를 잡아먹게 되었다. 종전에 먹이 사냥에 적합하도록 앞으로 돌출되었던 입은 차츰 평평하게 되고 입술, 혀, 목구멍, 두개(頭蓋) 등이 언어의 분절(分節)에 적합한 형태를 띠게 되었다. 프랑스의 고고인류학자 앙드레 르루아구랑에 의하면 손과 얼굴의 이 같은 해부학적 변형은 기술의 등장 및 언어 발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니까 손은 연장과 같은 계열이고, 얼굴은 언어와 같은 계열이다. 다시 말하면 손은 사물의 조작을 맡고, 얼굴은 말들의 조작을 담당하고 있다. 좀 더 전문적인 용어를 써 보자면 기호 체계 형성에서 얼굴은 담론(談論)적 요소이고, 손은 비담론적 요소이다. 좀 더 기술적인 관점에서 손은 테크놀로지와 관계가 있고, 얼굴은 언어와 관계가 있다.

소쉬르의 언어학에서 말은 단순히 청각 이미지의 반영(시니피앙)이거나 혹은 정신적 개념의 반영(시니피에)이었지만,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에게서 언어는 행동의 영역이다. 그들은 언어의 목적이 소통보다는 명령에 있다고 강조한다. 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목소리를 통해 자기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단어들을 가지고 실제로 어떤 일을 하는 것(do things)이다. 목사가 “그대들의 혼인이 성사되었음을 선언한다”고 말하면 한 쌍의 젊은이는 남편과 아내가 된다. 전화로 몇 마디 말만 했을 뿐인데 30분 후면 피자가 배달된다. 사회적인 실천은 언어에 의해 효력이 발생된다. 따라서 기호 체계는 권력의 구조이다.

그렇다면 말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언어 그 자체에 힘이 있는가. 들뢰즈와 가타리는 언어가 그 자체로 메시지를 운반한다고 믿는 것은 터무니없다고 말한다. “언어는 언제나 얼굴 속에 파묻혀 있을 뿐”이라고 했다(‘천 개의 고원’). 그러니까 말의 힘은 언어가 아니라 얼굴에서 나온다. 소위 들뢰즈가 말하는 얼굴성(性)(visag´eit´e)이다. 얼굴은 언표의 내용을 가시적으로 표현해 주고, 그 내용이 현재 그 말을 하고 있는 주체와 연관이 있음을 보증해 준다. 또 얼굴성의 특징은 익숙함과 개연성이다. 익히 알고 있는 어떤 얼굴에서 우리는 어떤 이야기가 나올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처음 만나는 사람의 이야기를 잘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그의 얼굴이 낯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익숙함과 개연성을 담보하는 얼굴성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얼굴은 개인적이지도 않다. 그는 어른이나 아이, 혹은 선생이나 경찰관이지, 이 세상에 단 하나인 어떤 인간이 아니다. 한 쌍의 젊은이를 부부로 만들어 주고, 한 사람의 죄인을 죽게 하는 것은 각기 목사와 판사의 얼굴을 통해서이지, 문법적인 언어를 통해 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언어란 중립적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보면 모든 글은 근원적으로 사전 속의 단어들을 문법 규칙에 따라 이리저리 조합한 것일 뿐이다. 아무 힘 없고, 의미 없는 이 말들이 한 사람의 특정한 얼굴을 통해 나올 때 드디어 그 글은 고유의 색깔과 의미와 힘을 지니게 된다. 지난 2년간 얼굴 없는 텍스트에 힘을 실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끝>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