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사이언스’ 시대 과학계 새 움직임
지난달 27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경쟁력위원회’. 이날 회의에서는 ‘허라이즌 2020’ 계획의 일환으로 2020년부터 유럽에서 발간되는 과학 논문 중 공적 자금이 조금이라도 투입된 논문은 즉시 공개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EU 경쟁력위원회 제공
○ 공유, 협력은 ‘빅사이언스’ 유지에 필수
국내 환자 83명을 포함해 아시아권 환자의 유전체 분석을 담당한 공구 한양대 의대 교수는 “전체 연구비의 100분의 1만 투입해 전 세계 유방암 환자의 유전체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들을 비교할 수 있었다”며 “이 연구는 개인 맞춤형 치료를 위한 항암제 개발의 토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 입자를 발견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공유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현재 CERN에는 40개국 172개 기관에서 약 3000명의 과학자가 거대강입자가속기(LHC)를 이용한 실험과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이형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정책연구실장은 “테라바이트(TB·1TB는 1024GB)급 데이터를 생산하는 가속기 등 첨단 과학장비를 활용한 연구에서는 국제 협력이 불가피하다”며 “대용량 데이터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글로벌 대용량 과학실험 데이터 허브센터(GSDC)’를 구축해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아인슈타인이 예견한 중력파를 또다시 감지하는 데 성공한 라이고(LIGO) 과학협력단에 소속된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은 LIGO의 중력파 관측 데이터에 연동된 컴퓨팅 환경을 갖춘 GSDC를 활용해 블랙홀과 중성자별의 물리량 측정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유럽은 이와 유사한 클라우드 환경인 ‘유럽오픈사이언스클라우드(EOSC)’를 구축하는 데 67억 유로(약 8조8275억 원)를 투입해 2021년 완공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 유럽-미국, 논문과 데이터까지 무료 공개 방침
일각에서는 연구 데이터와 결과를 다른 분야의 과학자와 일반 대중에게 공개하자는 ‘오픈 액세스(OA)’ 바람도 불고 있다. 정부 예산 등 국민의 세금이 들어간 연구 논문은 무상으로 공개하자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은 지난달 27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경쟁력위원회’에서 ‘삶을 바꾸는 개혁’의 하나로 “2020년부터 유럽에서 발간되는 과학 논문 중 공적자금이 조금이라도 투입된 논문은 즉시 공개한다”는 내용의 ‘허라이즌 2020’ 계획에 합의했다. 대부분의 학술지들이 유료로 논문을 공개하고 있어 과학 정보에 접근하는 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지적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논문 무료 공개 사이트인 ‘사이언스허브(Sci-Hub)’는 최근 5년간 논문 5000만 편을 무료로 제공해 왔고 이용자 수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에 따르면, 2월 한 달간 사이언스허브에서 내려받은 논문 수는 621만3089편을 기록했다. 사이언스는 “국가별로는 중국에서 가장 많이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논문 구매가 어려운 개발도상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이용자 수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주원균 KISTI NTIS사업실장은 “국내에도 연구 논문과 디지털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도록 ‘오픈사이언스 랩’ 등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 이용률이 저조하다”며 “오픈 액세스 움직임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송경은 동아사이언스 기자 kyunge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