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연기 뿜는데… “근거 뭐냐” 막무가내 공문 보여줘도 막말하며 단속거부… 5명뿐인 서울시 담당직원들 진땀 관광객 태운 전세버스 공회전 여전… 단속원 지나가면 다시 시동 걸어 반발 심해 年단속실적 20건 그쳐
9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 동문 앞에서 한 승합차가 단속에 적발돼 단속반이 배출가스를 측정하고 있다. 머플러에서는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임현석 기자 lhs@donga.com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이런 단속을 하는 거요?” 이날 단속에 걸린 2002년식 검은색 9인승 승합차 운전자는 삿대질을 하면서 언성을 높였다. 해당 차량은 도로변에서 배출가스 측정기로 점검한 결과 매연 배출 허용기준인 45%보다 높은 60%가 나왔다. 머플러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자 함께 단속을 나온 사회복무요원이 입과 코를 손으로 가렸다.
○ 목숨 건 단속, 단속반 매달고 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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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가 나왔으니 협조를 해주세요.”
“당신이 시청에서 나왔다는 증거가 어딨어요.”
관련 공문을 보여줘도 운전자는 막무가내였다. 사회복무요원이 앞을 막아서자 결국 운전자는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린 운전자는 정 주무관에게 “이야기할 것이 있으니 따라오라”며 위협했다. 사회복무요원 2명이 다가오자 운전자는 “알아서 하라”며 도로변에 차를 세워놓고 떠났다. 결국 운전자가 돌아왔지만 차량 한 대를 단속하기까지 총 30분이 걸렸다.
배기가스를 많이 배출하니 차량정비소에서 점검을 받아야 한다고 알리는 취지인데도 외면하는 운전자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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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주무관은 “그나마 최근엔 경유차 미세먼지가 호흡기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많이 알려져서 사정이 좀 나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오전에 배출가스 점검을 받은 김모 씨(62)는 매연이 기준치를 초과한 것으로 나오자 “폐차지원금이 나온다고 들었다”며 어떻게 해야 좋은지 서울시 직원에게 물었다.
○ “단속보다 의식 개선이 우선”
같은 시간 서울 중구 남산한옥마을과 을지로를 잇는 편도 5차로 충무로. 단오(端午)를 맞아 단체로 방한한 중국인 관광객을 한옥마을로 실어 나른 전세버스 7대가 시동을 걸어둔 채 한쪽 차로를 점령하고 있었다. 버스에서 뿜어져 나온 배기가스가 인도를 뒤덮었다. ‘공회전 단속’ 완장을 찬 서울시 친환경기동반 소속 단속원이 나타나자 모든 버스가 일제히 시동을 껐다. 하지만 몇 분 후, 단속원이 지나가자 일부 운전사는 슬그머니 다시 엔진을 켰다.
공회전은 도심 공해를 악화시키는 주범으로 꼽힌다. 단속원에게서 주의를 받은 뒤에도 2분 이상 공회전을 계속하면 과태료 5만 원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이날 도로 위에선 단속을 피하기 위한 ‘꼼수’가 난무했다. 한 버스 운전사는 주의를 받은 뒤 10m가량 움직여 다시 시동을 걸었다. 한 승용차는 단속을 맡은 이해관 주무관이 시동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배기구에 손을 갖다대자 급하게 차량을 출발시키다가 옆에 있던 기자를 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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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기환경 보전을 위해서는 과태료 수준을 더욱 높이고 위반 차량 단속에도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는 연간 단속 건수가 20여 건에 불과하다. 김동언 서울환경연합 정책팀장은 “경유차 배출가스는 시민들의 생활공간에서 나오는 만큼 오염물질의 위해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공회전이 대기환경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운전자가 알아야 문제가 해결된다”며 단속보다 계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임현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