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커플을 내세운 콘텐츠, 이른바 ‘백합물’이 인기를 끌고 있다. 6일 관객 200만 명을 돌파한 영화 ‘아가씨’와 아이돌 연습생과 전직 걸그룹 멤버를 내세운 웹드라마 ‘대세는 백합’, 195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한 레즈비언 멜로 영화 ‘캐롤’(위 사진부터). 퍼스트룩 제공·TV캐스트 화면 캡처·동아일보DB
이제는 ‘브로맨스’ 대신 ‘백합’이다?
최근 영화, 드라마, 웹툰 같은 대중문화에서 여성 간의 사랑을 다룬 콘텐츠인 이른바 백합물이 인기다. 백합물이 남자와 남자 간의 애틋한 감정을 다룬 ‘브로맨스’(‘brother’와 ‘romance’의 합성어)에 이어 새로운 흥행코드로 떠오르고 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는 개봉 6일 만인 6일 200만 관객을 모았다. 이 영화는 귀족 아가씨 히데코(김민희)와 그를 속여야 하면서도 그에게 사랑을 느끼는 하녀 숙희(김태리) 사이의 갈등과 사랑을 다루고 있다.
백합물의 강세는 안방극장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4월 종영한 SBS 드라마 ‘돌아와요 아저씨’는 극중 조직폭력배 한기탁(김수로)이 청순한 외모의 홍난(오연서)으로 되살아나 기탁의 옛 사랑 여배우 이연(이하늬)을 돕는다는 백합 코드를 첨가했다. 홍난과 이연은 드라마 팬들에게 ‘홍연 커플’로 불리며, 팬들의 각종 패러디물(팬아트, 팬픽, 팬무비)을 양산하기도 했다.
백합물의 인기는 지난해 ‘걸 크러시(girl crush·여성이 여성에게 반해 팬덤을 형성하는 현상)’의 연장선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지난해 MBC ‘진짜 사나이―여군특집’, 엠넷 ‘언프리티 랩스타’ 등이 인기를 끌며 걸 크러시가 대중문화의 새로운 트렌드로 부각됐다.
‘대세는 백합’을 공동 연출한 윤성호 감독은 “걸그룹만 해도 여성 팬이 충성도가 가장 높다. 이 같은 ‘걸 크러시’가 떠오르면서 레즈비언 서사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거부감이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백합물이 주는 전복적 재미도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돌아와요 아저씨’의 제작사 신영E&C의 손재성 이사는 “극중 기탁이 다시 남자로 환생해서는 재미가 없다고 봤다. 아저씨가 여성으로 환생해 옛 사랑을 만났을 때 극적인 재미가 더 살아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설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브로맨스가 더 이상 새롭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도 백합물이 주목받는 이유다.
여성 간의 동성애를 소재로 한 문화 콘텐츠를 이르는 말. 일본에서 남성 동성애를 장미, 여성 동성애를 백합에 비유한 것에서 유래했다. 1990년대 일본에서 애니메이션 ‘세일러문’ ‘소녀혁명 우테나’ 등을 여성 동성애 코드로 재해석한 팬들의 창작물이 등장하며 사용되기 시작했다. 걸스러브(Girls‘ Love)의 약자인 GL물과 같은 뜻이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