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환 위작품 논란’ 계기로 본 납함유 유채물감
지난해 12월 K옥션에서 이우환 씨의 1978년 작품으로 등록돼 낙찰된 위작 의혹 그림. 경찰은 “진품에서 안료의 납 성분이 훨씬 많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동아일보DB
경찰은 상세한 데이터 공개를 거절했지만 시간에 따른 변색 양상이 뚜렷하다면 납 성분을 상당량 함유한 안료를 쓴 그림으로 봐야 한다. 김주삼 아트C&R 미술품보존복원연구소 소장은 “납을 주재료로 한 ‘레드(lead·납) 화이트’ 유채 물감은 건조가 빠르고 피막이 견고해 금속성 질감을 표현하는 데 유리하지만 독성을 갖고 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둡게 변색된다”고 말했다.
유해성이 알려진 뒤 레드 화이트와 비슷한 질감을 내고 독성이 적은 ‘티타늄 화이트’가 보급됐다. 그러나 미묘한 색감과 보존성 차이를 이유로 여전히 레드 화이트를 찾아 쓰는 작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화가가 팔레트에 개어 쓰는 유채 물감이 ‘납 중독 위협’에서 벗어난 것은 1970년대 이후다. 납 성분이 함유된 실내 페인트의 유해성이 부각되면서 납을 주재료로 만든 흰색 유채 물감 사용도 줄어들었다. 동아일보DB
라파엘로가 ‘아테네 학당’에 그려 넣은 불편한 자세의 미켈란젤로 초상(위 사진). 미켈란젤로는 카라바조(가운데 사진), 고야(아래 사진)와 더불어 확연한 납 중독 증상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DB
그림에 쓰인 납 성분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 원종욱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유채 물감 속 납 성분에 대한 연구 사례는 기억나지 않지만 미국과 러시아에서 납 성분을 함유한 실내용 페인트의 유해성이 사회적 이슈가 된 사례와 비교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말라붙은 페인트에서 떨어져 나온 가루를 장기간 호흡기로 흡수한 어린이의 학습능력과 심폐기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밝혀진 뒤 납 성분을 쓴 안료와 페인트의 유해성 논란은 해외에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소화기보다는 호흡기를 통해 흡수된 납 성분이 인체에 독으로 작용하며 복통, 신경마비, 신장장애 등의 증상을 일으킨다. 원 교수는 “납 성분을 함유한 안료로 그린 벽화에 오래 접촉한 사람이 피해를 입은 사례는 있다. 작업실과 전시실에서 안료의 성분이 미치는 영향의 차이에 대해서는 보다 장기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