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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인생 수담]“뻔한 수 두면 패배… 일도 바둑도 개성 드러나야”

입력 | 2016-06-01 03:00:00

강명주 지지옥션 회장




○나의 한 수●
 
역발상으로 역전하라

바둑이 불리할 때, 사업이 잘 안 풀릴 때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한다. 이런 역발상을 해야 바둑 사업은 물론이고 인생도 역전이 가능하다. 크게 한판 벌이고 싶은 역발상이 아직도 많다.

강명주 회장의 바둑은 잡초처럼 느껴졌다. 밟으면 당장은 밟혀도 굴하지 않고 되살아났다. 한 판 이기려면 꽤 많은 공력이 드는 질긴 바둑이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기백이 넘쳤다. 상대의 강수를 주저하지 않고 맞받아쳤고, 상대의 예상을 벗어나는 행마(行馬)를 했다. 흑을 잡은 기자가 초반 유리했으나 기백에 눌린 탓인지 슬슬 형세가 나빠지더니 덤을 내기 힘든 국면까지 다다랐다. 30분 안에 끝내자던 바둑이 1시간 가까이 이어졌고 결국 기자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

지지옥션 강명주 회장(73)은 흔히 얘기하는 ‘바둑광’이다. 1983년 창간된 지지옥션은 전국 지방법원의 부동산 경매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회사. 최근 부동산 펀드, 호텔로 사업을 다각화했지만 연매출은 150억 원대. 이익률이 높다 해도 이 정도 매출의 기업이 매년 2억5000만 원을 들여 프로 기전인 ‘지지옥션배’를 후원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제가 바둑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후원 이후 지지옥션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져 많은 도움이 됐어요. 바둑대회를 후원한다고 하니 우리 회사를 준재벌급으로 아는 사람도 있어요. 하하.”

지지옥션배는 이전까지 여성 기사와 만 45세 이상 남성 기사(시니어)의 대결로 치러졌으나 최근 여성 기사가 2년 연속 압도적 승리를 거두자 남성 기사 연령을 만 40세로 낮췄다. 이창호 9단(41)도 출전이 가능해 대회가 더욱 흥미진진하게 됐다.

강 회장은 아마 5단 실력인 바둑과 싱글 수준인 골프를 다 좋아하지만 “바둑이 나를 더 행복하게 한다”고 했다.

“청무성(聽無聲)이죠. 바둑은 소리 없는 소리를 듣는 거예요. 대국을 하면 한마디도 하지 않아도 많은 대화를 나눕니다. 바둑을 두면 금방 친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죠. 인생도 사업도 소리 없는 소리를 듣는 경지가 되면 성공하죠.”

경북 울진 출신인 그는 서울로 무작정 상경해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하면서 고려대 축산과를 들어갔다. 하지만 축산에는 관심이 없었고 대학신문에 ‘타이거’라는 필명으로 만평을 그려 200회나 이어갔다. 졸업 후 석유곤로 제조업을 하다 ‘쫄딱’ 망한 뒤 재기를 위해 구상한 것이 대학 때 만평으로 인연을 맺은 신문 사업. 그러나 기존 신문처럼 광고를 받아 운영하기 어렵다고 본 그는 ‘광고 없는 매체’라는 역발상으로 법원경매 정보를 담는 계약경제일보(지지옥션 전신)를 창간했다. 당시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법원경매를 소개하자 정보지가 날개 돋친 듯 팔렸고, 구독료를 선불로 해도 독자가 끊이지 않았다. 이후 동종 업체로부터 많은 도전을 받았으나 창간 이후 업계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그는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실천에 옮긴다. 바둑 대회 창설이 그렇고, 광고 없는 신문이 그렇다. 경북 경주의 한 호텔을 인수해 ‘지지호텔’을 열며 호텔업에도 뛰어들었는데 여기서도 평범하지 않은 영업을 하고 있다. 주중에 경주로 신혼여행을 오는 커플에게 2박 3일 무료 숙박을 제공하는 것.

“어차피 주중에 공실인데 호텔 이름도 알리고 돈도 별로 안 들고 투숙객 기분도 좋고…. 다 좋잖아요. 그리고 관리자에게 ‘제발 흑자 내겠다’는 얘기 그만하라고 했어요. 투숙객 마음부터 잡아야 흑자를 내든지 말든지 하죠.”

적어도 그는 코앞만 내다보는 사업가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의 바둑도 당장의 수에만 급급하지 않고 기백이 넘쳤나 보다. “바둑도 남들이 다 아는 뻔한 수를 두면 재미도 없고 이기기도 힘들어요. 나만의 바둑, 내 개성이 드러나는 바둑, 굴복하지 않는 바둑을 둬야 이길 수 있죠.”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