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 길고양이 돌봄모임 ‘십시일냥’ 서식 지도-급식소 만들어 보호, SNS 통해 구조… 입양 알선도
회장 정민수 씨(27·왼쪽에서 두 번째)를 포함한 ‘십시일냥’ 회원들이 23일 한양대 서울캠퍼스에서 아기 고양이 ‘이냥이’와 함께 포즈를 취하며 길고양이 보호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이냥이는 십시일냥이 17일 서울 왕십리역 근처에서 구조한 아기 고양이로 곧 새 주인에게 입양될 예정이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이냥이를 구한 은인은 한양대 서울캠퍼스 길고양이 돌봄 모임 ‘십시일냥’ 회원 박성한 씨(22)였다. 십시일냥은 ‘길고양이들이 적어도 배는 곯지 않게 하자’는 목표로 3월 결성됐다. 현재 회원은 44명. 회장 정민수 씨(27)는 2년 전 캠퍼스에 살던 길고양이 행냥이, 하냥이를 보고 고양이 보호에 관심을 가졌다. 학생들이 둘을 보며 즐거워하던 모습에서 길고양이도 캠퍼스의 일원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책과 인터넷 자료를 통해 고양이에 대해 공부한 뒤 지난해 말부터 모임 결성에 나서 올해 ‘실행’할 수 있었다.
한양대 일원에는 30여 마리의 길고양이가 산다. 십시일냥은 고양이 밥을 챙기는 것뿐만 아니라 길고양이가 유해동물 취급을 받지 않고 캠퍼스 생태계에 자리 잡도록 하고 있다. 독자적인 운영 구조도 갖췄다. 직접 캠퍼스를 누비며 만든 길고양이 위치 지도 ‘캣맵’과 다섯 곳의 급식소도 만들었다. 급식소는 1곳마다 2명이 관리한다. 길고양이 관리에 골치 아팠던 학교본부는 십시일냥 덕분에 고민을 덜었다.
살림은 ‘십시일반’ 회비로 운영한다. 사료 값 대기도 빠듯하지만 공대생이 급식소를 만들고 디자인 전공 친구에게 홍보용 이미지 제작을 부탁하는 등 힘을 합쳐 꾸려가고 있다. 회원들은 SNS의 캠퍼스 길고양이 이야기에 놀이를 하듯 친구 이름을 태그하며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의류학과에 다니는 회원 송영희 씨(22·여)는 “십시일냥에 공감해 재능기부 하겠다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한 시민은 한양대생 조카가 SNS에 남긴 응원에 공감해 사료를 기부했다.
십시일냥은 이런 작은 움직임이 최근 사회 문제로 떠오른 동물권리 보호를 개선하는 데 보탬이 될 것이라 믿는다. 졸업 후 동물보호단체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정유빈 씨(21·여)는 “요즘 대학생들이 취업 스펙 쌓기 동아리에 몰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나는 버려진 고양이를 돌보며 생명의 소중함을 배우는 게 즐겁다”며 밝게 웃었다.
회장 정 씨는 십시일냥을 잘 이끌기 위해 이번 학기 3과목 이수를 포기했다. “언론을 통해 폭력적인 동물 번식장에 대한 실상이 드러나며 시민들이 분노했고 동물권리 보호에 대한 관심도 올라갔습니다. 작은 생명 하나 보호하지 못하는 나라가 인권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요. 십시일냥은 길 위의 작은 생명도 우리 이웃이라는 메시지를 계속 전할 겁니다.”
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