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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명인열전]“청바지처럼 세계인들이 즐겨 입는 옷 만들고 싶어요”

입력 | 2016-05-23 03:00:00

<47> 한복디자이너 황이슬 씨




한복을 입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한복이 특별한 날에만 입던 이벤트용 옷이 아니라 거리의 일상복이 된 것이다. 스물아홉 젊은 한복 CEO이자 한복 디자이너인 황이슬 씨는 한복을 청바지처럼 일상 생활에서 입을 수 있는 세계인의 옷으로 만드는 게 꿈이다. ㈜손짱 제공

“당신은 언제 한복을 입으십니까? 돌잔치, 설날, 결혼식?”

평생을 통틀어 한복을 입을 기회가 얼마나 될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곰곰이 자신의 옛일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돈을 주면서 입으라 해도 입지 않을 것 같던’ 한복을 차려입은 청소년과 젊은이들이 거리를 오가고 있다. 서울 북촌과 홍익대 앞, 전북 전주한옥마을 등에는 다양한 한복을 입은 젊은이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인증샷 찍기에 바쁘다.

20, 30대 여성들의 온라인 쇼핑 목록 중 생활한복은 5위 안에 들어간다. 한복을 입고 해외여행을 가거나 수학여행 때 한복을 입는 학생도 늘고 있다. 이들에게 왜 한복을 입느냐고 물으면 대답은 간단하다. “예쁘잖아요. 한국에서 한국 옷 입는데 뭐가 이상해요?”

젊은층에 불고 있는 새로운 한복 붐의 중심에 20대 한복집 최고경영자(CEO)인 ㈜손짱 대표 황이슬 씨(29·여·전북 전주시)가 있다. 그는 패션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스무 살 때까지 서울 한 번 간 적 없는 전주 토박이다.

○예복에서 거리로 나온 한복


그의 한복 사업은 우연한 계기로 시작됐다. 임업직 공무원이 되기 위해 전북대 산림자원학과에 들어간 2006년 5월, 만화동아리의 축제 행사인 ‘코스튬 플레이’(일명 코스프레)에 참가했다. 당시 푹 빠져 보던 만화 ‘궁’에 나오는 퓨전 한복을 만들어 입고 나갔다. 짧은 플레어스커트에 반소매 저고리 모양이었다. 예쁘다는 칭찬에 자신감을 얻었고 인터넷 중고장터에 올렸더니 사흘 만에 팔렸다. 8만 원을 받았다. ‘사고 싶다’는 문의가 이어졌다.

“이런 한복을 입고 싶어 하는 사람이 나 말고도 여럿 있구나.”

내친김에 그해 8월 온라인 쇼핑몰을 열고 한복 사업을 시작했다. 가진 돈은 통신사업자 등록비 4만5000원이 전부였다. 주문 들어오는 만큼 제작해 판매하니 재고 염려가 없었고 큰돈이 들지 않으니 손해도 없을 것 같았다. 한복을 만들어 본 적도, 입어 본 적도 없지만 어려서부터 인형 만들기를 좋아했고 부모님이 커튼 가게를 해 재료나 공정은 곧 익숙해졌다.

첫 1년은 한 달에 한 벌 정도밖에 못 팔았다. 연매출이 100만 원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대여 사업을 병행하면서 2008년 월 매출이 700만∼800만 원까지 올라갔다. 방송에 소개되고 ‘디자인이 좋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사업은 날로 커졌다. 모델은 친구와 동생들이 맡고 자신부터 각종 행사 때마다 직접 만든 한복을 입었다. “돈이 모자라면 무대가 아닌 길거리에서 패션쇼를 하면 되죠.” 그는 긍정 마인드와 젊은 돌파력으로 위기를 하나하나 극복해 갔다.

황 씨가 만드는 한복은 일상에서 입는 생활복이다. 현대적인 무늬에 마나 면, 합성섬유 등으로 만들어 세탁기에 빨아 입을 수도 있다. 동정이나 저고리의 매무새, 치마의 주름 등 한복의 전반적 기능과 스타일은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감각과 흐름을 곁들인다. 레이스와 시스루가 유행하면 이를 접목한다.

그는 기성복 팬츠에 저고리를 입거나 평범한 티셔츠에 한복 바지나 치마를 입는 스타일링을 추구한다. 한복 치마에 가죽 재킷과 워커를 매치하기도 한다. “‘왜 한복 저고리를 청바지랑 입었어?’라거나 ‘한복 치마 밑에 운동화를 신은 건 좀 이상하잖아?’라는 반응은 사라져야 합니다.”

대부분의 소재를 동대문 시장에서 구해 오고 마진과 공정을 줄여 대중화를 꾀한다. 목적에 맞고 과소비하지 않아야 최고의 옷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 청바지처럼 세계인이 한복 입는 날까지

그는 스스로를 ‘한복 전도사’로 소개한다. 한복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그 아름다움에 빠지게 하고 싶은 바람 때문이다. 자신이 만든 한복을 일상복으로 입고 다니면서 ‘한복 입고 벚꽃 놀이’ ‘한복 입고 클럽 가기’ ‘한옥 입고 버스 타기’ 등의 사진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다. ‘좋아요’ 반응이 즉각 올라온다. 그들의 요구를 디자인에도 반영한다. 그는 페이스북과 블로그, 인스타그램을 통해 매일 7000여 명과 소통한다.

2014년 8월 홍익대 앞에서 한복 길거리 패션쇼를 열었고 전주한옥마을에서도 두 차례 한복 퍼레이드를 벌였다. 한복과 관련된 고객 에피소드 공모전을 열어 한복 스토리를 만들어 가기도 한다. 2011년 싱가포르에서 버선 주문이 하나 들어 왔다. 가격 3000원에 배송비가 6000원이었다. 2011년 영문 홈페이지를 3개월 만에 독학으로 제작한 뒤 광고를 하지 않아도 해외 매출이 늘기 시작했다. 한류 붐에다 서구의 핼러윈 파티 등에서 한복을 입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베트남과 필리핀 등 동남아에서 주문이 많이 들어온다.

그는 한복을 한 번 입어본 뒤에는 잘 입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반짝 유행을 넘어 한복이 생활 속에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최근 자신의 4층 건물 지하에 오프라인 매장과 쇼룸, 교육을 겸하는 공간을 차렸다. 한복 사업을 하고 싶어 하는 청년들을 교육하는 인큐베이팅 활동도 계획 중이다.

아무리 바빠도 대학 특강에 응하고 자신에게 e메일을 보내 진로를 상담하는 학생들에게 성실하게 답장을 보낸다. 최신 트렌드를 익히기 위해 서울에서 열리는 패션쇼나 학회에도 가능하면 참석한다.

“한복을 한복집이 아닌 일반 상점에서도 살 수 있고, 청바지처럼 세계인이 데이트하러 갈 때나 영화 보러 갈 때 입을 수 있는 옷이 되도록 하는 게 제 숙제죠.”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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