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볼라 계기 ‘식물 백신-치료제’ 주목]日, 담뱃잎서 독감백신 대량 생산 내년 임상시험, 2020년 출시 계획… 동물세포-유정란 이용 백신보다 양산 빨라 전염병에 신속 대처 가능… 국내에선 축산용 백신 연구 활발 재배법-복용량 표준화가 남은 과제
담배는 성장 속도가 빠르고 잎이 커서 백신이나 치료제로 쓸 성분을 얻기 쉽다. 고기성 중앙대 의대 교수팀은 담배나 배추를 이용해 대장암, 유방암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고기성 중앙대 의대 교수 제공
○ 값싸고 빠르게 대량 생산 가능한 식물 백신
지난주 일본 미쓰비시 다나베제약은 담뱃잎을 이용해 독감 백신을 대량 생산했으며 이르면 내년에 미국과 캐나다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2020년부터 본격 판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광고 로드중
식물을 이용해 백신을 만들려는 시도는 1990년 로이 커티스 미국 플로리다대 교수팀이 담배에서 충치균 백신으로 쓸 수 있는 항원단백질을 만든 데서 시작했다. 1995년에는 찰스 아른첸 애리조나대 교수팀이 감자로 만든 이열성독소 백신을 쥐에게 먹였더니 효과가 있었다고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국내에서는 가축 전염병을 예방하는 식물 백신 연구가 활발하다. 김종범 농촌진흥청 연구관은 알팔파를 이용해 돼지콜레라 백신을 개발했으며, 양문식 전북대 부총장은 돼지의 바이러스성 설사병을 방지하는 백신을 개발했다.
김 연구관은 “식물 백신 대부분이 주사가 아닌 먹는 방식으로 개발되고 있어 냉동 보관이 필요한 주사액과 달리 이동이 쉽다”며 “축산농가뿐 아니라 개발도상국에서도 간편하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 ‘감자 백신’ ‘바나나 백신’ 상용화 안 된 이유
광고 로드중
가장 큰 문제는 식물이 만든 항원단백질을 먹는다고 해서 사람이나 가축에게 바로 면역력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입으로 섭취한 식물 백신이 소화·흡수 과정을 거쳐 면역시스템에 자리 잡는 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이에 항원단백질을 정밀하게 설계해 효능을 높이는 연구가 이어졌다. 잉아 히체로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대 교수팀은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인간 유두종 바이러스(HPV)에서 병원성을 제거한 뒤 식물 바이러스를 통해 담배에 주입하는 방식으로 백신을 만들었다고 2월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했다.
고기성 중앙대 의대 교수팀은 담배나 배추의 염색체에 항원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고정시키는 방식을 이용해 대장암 유방암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한 번에 여러 가지 항원단백질을 생산하는 다가(多價) 식물 백신 연구도 한창이다.
식물이 만드는 항원단백질의 양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한때 항원단백질이 포함된 ‘감자 백신’ ‘바나나 백신’을 먹기만 하면 면역력이 생길 거라 기대했지만 실제 효능이 발휘되려면 수십 수백 개를 먹어야 한다.
광고 로드중
고 교수는 “Z맵처럼 식물로 만든 항체로 치료제를 개발하는 연구와 백신을 개발하려는 연구가 비슷한 비율로 진행되고 있다”며 “식물의 놀라운 생산력은 질병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한 비장의 무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