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염치(廉恥)’다. 염우(廉隅)라고도 한다. 언중은 발음하기 쉬워선지 염치 뒤에 따르는 동사로 ‘불구(不拘)하다’를 즐겨 쓴다. 불구하다는 ‘얽매여 거리끼지 아니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염치 불구하고’는 ‘염치 따위는 생각지 않고 제멋대로’란 뜻이 되어 버린다. 의도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뜻이 되어버리니 이상하지 않은가.
바른 표현은 ‘염치 불고하다’다. ‘불고(不顧)하다’는 ‘돌아보지 아니하다’란 의미이니 ‘염치 불고하고’는 ‘염치를 차리지 못하고’라는 뜻. ‘체면 불구하고’란 말 역시 ‘체면 불고하고’가 옳다.
광고 로드중
‘터울’과 ‘역임(歷任)’도 잘못 쓰기 쉽다. 터울은 ‘한 어머니의 먼저 낳은 아이와 다음에 낳은 아이의 나이 차이’다. 그러니 어머니가 같은 형제와 자매, 남매 사이에만 쓸 수 있는 말이다. 이복(異腹) 형제자매에게조차 써선 안 된다.
누군가 새로운 직위에 오르면 으레 등장하는 낱말이 ‘역임(歷任)’이다. ‘여러 직위를 두루 거쳐 지냈다’는 뜻이다. ‘여러’라는 조건에서 알 수 있듯이 달랑 한 직위를 언급하고는 ‘역임했다’고 하면 안 된다. ‘사회부장 정치부장 편집국장을 역임했다’로 써야 옳다. 이런 잘못을 애당초 피하는 방법? ‘거쳤다’나 ‘지냈다’ 등으로 쓰면 된다. 부드럽고 무엇보다 뜻이 명확하지 않은가.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