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우리네 사회가 그런 식으로 인간을 처치하도록 조직되어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 보셨나요?―전락(알베르 카뮈·책세상·2010년) 》
초등학교 때 붕어 10마리를 잡아다 좁은 어항에 기른 적이 있다. 다들 잘 자랐는데 유독 한 놈만 비실거렸다. 자세히 보니 다른 고기들이 밤마다 비늘을 입으로 쪼았다. 처음 잡혔을 땐 비늘 한두 개가 빠져 있었지만 며칠 지나니 속살이 온통 드러났다. 녀석은 1주일 뒤 수면에 둥둥 뜬 채로 건져졌다.
전직 변호사인 클라망스는 이런 본성이 잘 발달된 사람이었다. 남의 잘못을 드러내는 걸 아예 취미로 삼았다. 그는 안개가 내려앉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술집에서 생면부지의 먹잇감이 옆에 앉기만을 기다렸다.
클라망스의 대화는 늘 자기 과오에 대한 고백으로 시작한다. 권태에 못 이겨 걸인을 괴롭히거나 미술품을 훔쳤다는 식의 일화들이다.
하지만 이것은 상대방이 자신의 죄를 실토하게 유도하기 위한 미끼였다. 고해성사의 주어는 슬그머니 ‘나’에서 ‘우리’로 바뀌고, 상대방은 죄악의 공범으로 포섭된다. 어느덧 상대는 앞서보다 더 큰 잘못을 고백하면서 그의 동정을 구한다. ‘참회자’에서 ‘재판관’으로 바뀐 클라망스는 “하느님 아버지가 된 듯한 도취감”을 누리게 된다.
카뮈의 통찰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잘나가던 연예인도 TV쇼에서 내뱉은 말실수 한 번으로 ‘인성 논란’에 휘말리다 추락하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천호성 기자 thousa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