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계열사들이 현정은 회장 일가가 대주주로 있는 회사에 일감몰아주기를 하다가 적발돼 과징금을 물게 됐다. 지난해 2월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를 금지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시행된 이후 첫 제재 사례다. 현대그룹은 구조조정 중인 주력사 현대상선이 해운동맹에서 배제되고 용선료 인하 협상 마감(20일)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사주 일가의 불공정행위까지 드러나 처벌을 받게 됨으로써 사면초가에 몰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5일 현대증권, 현대로지스틱스, HST, 쓰리비 등 4개사에 총수일가 사익편취 및 부당지원행위 등의 혐의로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2억8500만 원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또 총수일가에 대한 부당지원 규모가 큰 운송전문업체 현대로지스틱스에 대해선 검찰에 고발조치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증권과 현대로지스틱스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제부(弟夫)인 변찬중 씨가 지분을 보유한 회사를 부당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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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로지스틱스는 변 씨가 지분의 40%, 그의 두 아들이 지분 60%를 보유한 택배운송장 구매대행업체 쓰리비에 일감을 몰아줬다. 현대로지스틱스는 기존 거래처와 계약 기간이 1년 정도 남았는데도 이를 해지하고 쓰리비와 계약을 맺었다. 경쟁회사가 택배운송장 한 장당 30원대 후반에서 40원대 초반에 공급하지만 현대로지스틱스는 쓰리비에서 55¤60원을 주고 운송장을 샀다. 최대 45%까지 비싸게 산 것이다. 쓰리비에 대한 부당지원 규모는 2012년 5월부터 2015년 4월까지 3년 간 56억2500만 원에 달했다. 그 과정에서 총수일가는 14억 원의 부당이득을 취했다. 일감몰아주기 대상이 된 현대증권과 현대로지스틱스는 각각 KB금융과 롯데그룹에 매각돼 현재는 현대그룹 계열사가 아니다.
공정위는 현 회장 개인에 대한 제재조치는 하지 않았다. 공정위는 “현 회장이 직접 사익 편취 행위를 지시하거나 관여해야 제재할 수 있지만 그런 사실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현대그룹 계열사 관계자들은 공정위 조사에서 회사 임원이 부당행위를 지시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현대로지스틱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현 회장이 수사선상에 오를 가능성은 열려있다. 검찰 조사에서 혐의가 확인되면 총수 일가에게 3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2억 원 이하의 벌금형이 가능하다.
공정위는 첫 제재 사례가 나온 만큼 한진, 하이트진로, 한화, CJ 등에 대한 후속 조사 결과도 신속히 내놓는다는 방침이다. 공정위 제재에 대해 현대그룹은 “공정위로부터 관련 의결서를 받고 난 후 상세 내용을 법무법인 등과 면밀하게 검토해 향후 대응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세종=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정민지 기자 jm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