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1년/우리는 달라졌다]<中> 허술한 응급실 ‘감염의 온상’
《 지난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사태가 온 나라를 흔들었을 때 방역의 최전선이었던 응급실은 역으로 가장 큰 허점을 드러낸 공간이 됐다. 14번 환자를 일반 응급실에 사흘간 입원시켜 80여 명에게 감염시키는 ‘슈퍼 전파자’가 되도록 방치했는가 하면, 메르스에 감염된 응급 이송요원(137번 환자)이 일주일넘게 병원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감염병을 막는 관문이 아닌 ‘병원 내 감염’의 진원지로 전락했던 셈. 동아일보 취재팀이 8, 9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센터에서 ‘보조 안전요원’으로 활동하며 그 후 1년간 응급실 운영 실태가 어떻게 개선됐는지 체험했다. 》
○ “왜 막느냐” 항의하는 보호자
“보호자 출입증 있어야 합니다” 동아일보 조건희 기자(왼쪽)가 9일 오전 감염병 유입 차단의 최전선인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응급실 보조인력 체험을 하고 있다. 보건 당국은 메르스 사태 이후 응급실에 출입할 수 있는 보호자를 단 1명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조 기자는 응급실에 임의로 들어가려는 보호자들을 막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보건 당국은 응급실에 환자 이외 많은 사람이 불필요하게 드나드는 것을 막기 위해 보호자 출입 제한을 일선 병·의원에 권고하고 있다. 연내에 관련법을 개정해 보호자 출입 제한을 의무화할 방침이다. 하지만 현장 의료진은 이 같은 사정을 모르는 일부 보호자의 막무가내 행동과 항의에 시달리고 있다. 한 간호사는 “무작정 응급실에 들어가려던 보호자가 경비원을 폭행해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 응급실을 동네 의원처럼 이용하는 ‘꼼수’ 환자
응급환자 분류체계 세분화는 경증 환자가 뒤섞여 ‘감염병의 온상’이 될 우려가 높은 응급실 과밀화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 대책으로 꼽힌다. 반드시 필요한 환자만 응급 진료를 받도록 해 제 기능을 하게 만들자는 것. 하지만 등급 판정에 불만을 제기하거나 외래진료를 위한 꼼수로 응급실을 찾는 환자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응급환자가 아닌 주정뱅이가 응급 의료진의 시간을 뺏는 모습도 여전했다. 같은 날 앰뷸런스에 실려 온 40대 여성은 아무런 응급 증상을 보이지 않았지만 만취해 길에 쓰러져 있던 탓에 경찰이 일단 병원으로 이송한 사례였다. 40분 뒤 부모가 응급실로 찾아올 때까지 다른 환자를 돌봐야 하는 의료진은 통곡하며 소리를 지르는 여성을 말리느라 진땀을 흘렸다.
달라진 또 하나의 풍경은 응급실을 찾은 환자를 응급실로 들여보내기 전 예진실에서 1차 문진을 하고 체온을 측정하는 것이다. 고열과 기침 등 메르스 의심 증상을 보이고 2주 내에 아랍에미리트(UAE) 등 메르스 발생국에 다녀온 이력이 있다면 일반실이 아닌 음압 격리실로 보낸다. 격리된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은 전신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정밀 검사를 실시해 음성 판정이 나올 때까지 의심환자를 다른 일반 환자와 분리해 둔다.
하지만 현재 전국 센터급 이상 응급실 145곳 중 예진 및 격리 시설이 모두 완공된 곳은 국립중앙의료원과 조선대병원, 분당차병원 등 3곳뿐이다. 90여 곳은 공사 중이고, 나머지 50여 곳은 공간 부족 등을 이유로 공사 계획조차 내지 않고 있다.
의료정보 전문가들은 메르스 등 호흡기 감염 질환 환자의 진료 정보를 의료기관끼리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현재 질병관리본부와 보건소, 검역소 등 유관기관은 ‘메르스 의심환자·접촉자 관리 시스템’에 의심환자와 접촉자 정보를 기록하고 있지만 일선 병·의원은 이 정보에 접근할 수 없다. 병·의원마다 전자의무기록(EMR)을 관리하는 서버도 따로 두고 있어 직전에 다른 병원에서 메르스 검사를 받았더라도 본인이 말하지 않으면 의료진이 이를 확인할 수 없다. 신상도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대한응급학회 공보이사)는 “현행 시스템으로는 진료 기록을 속이는 일부 감염자로 인해 의료진과 다른 환자들이 무차별로 노출될 위험을 차단하기 어렵다”며 “급성 감염병에 한해 의심환자 정보를 병·의원에 실시간으로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