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1989년 이후 한국현대미술과 사진’전
위 두 사진과 아래 두 사진은 한 기획전의 다른 전시실 모습이다. 위쪽 사진의 주명덕(왼쪽) 정희승 작가는 각각 넉넉한 구획을 하나씩 차지하고 여유롭게 작품을 배치했다. 아래 왼쪽 사진은 여러 작가의 작품을 설명 없이 혼재한 다른 전시실 모습이다. 오른쪽은 엘리베이터 옆에 걸린 노순택의 ‘내장’.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수준에 관계없이 하나의 작품은 한 작가가 시간과 노력을 응집시켜 빚은 결과물이다. 전시공간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그런 결실이 최선의 상태로 관람객과 만나도록 연결하는 일이다. 그러나 “2013년 서울관 개관 이래 첫 대규모 사진전”임을 강조한 이번 기획전은 작품과 관객의 교감을 위한 최소한의 공간조차 고려하지 않았다. 》
스시와 불고기와 샐러드를 한데 뒤섞어 쌓아 담은 뷔페 접시처럼, 작가 75명의 작품 300여 점을 전시실 3곳에 한꺼번에 쓸어 담듯 모아 걸었다. 8일 오후 지하 제2전시실을 찾은 관람객들은 눈앞의 작품을 들여다보는 한편으로 연신 엇갈리며 마주치는 다른 사람들을 이리저리 피해 움직여야 했다.
이승택의 ‘이끼 심는 예술가’(1975년), 김용익의 ‘신촌의 겨울’(1981년), 양혜규의 ‘평상의 사회적 조건’(2001년), 성능경의 ‘S씨의 후손들-망친 사진이 더 아름답다’(1992년) 등 이 근방에 몰아넣어져 걸린 작품들이 처한 형편은 바라보기 민망할 지경이다. 신학철의 작품들은 여기저기 빈틈을 메우는 반창고처럼 분산됐다. 벽면 모퉁이에 낮게 걸렸던 그의 작품 한 점은 결국 맞은편 작품을 보다 뒷걸음질하던 관람객의 머리에 부딪혀 떨어져 일단 철수됐다. 사라진 옛 거리나 사물이 남긴 자취를 소박한 시선으로 담아낸 작품이, 대형 행위예술 기록사진이나 전위적 설치작품 옆에 바투 붙었다. 불고기 소스에 젖은 초밥을 씹는 느낌이다.
밀도는 더없이 불균일하다. 명성이 높거나 기획자가 중요하다고 분류한 작가들은 소규모 개인전처럼 1층 제1전시실에서 넉넉한 공간을 확보했다. 4장씩 출품한 주명덕 배병우 작가는 각각 널찍한 개별 구획 또는 벽면 하나를 통째로 차지했다. 구본창 민병헌 김수강 이정진의 작품이 설치된 공간의 볼륨은 관람객을 내려다보듯 기세등등하다. 그 사이에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의 부인인 송영숙 한미사진미술관장의 폴라로이드 소품들이 이채롭게 걸려 있다. 이지윤 서울관 운영부장은 “사회적 명망이 있어 오히려 가치만큼 주목받지 못한 작가”라고 설명했다.
작가에게 ‘국현 전시’는 소중한 이력이다. 이번 기획전은 한국의 유일한 국립 미술관이 작가의 열망을 빌미로 그들을 어떤 잣대로 대하고 있는지 또렷이 보여준다. 구색 맞추기 식으로 말미에 뭉뚱그려 붙인 ‘패션사진 특별전’은 생뚱맞기 그지없는 디저트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