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저서 ‘권력과 인간’ 상당 부문 반영, 영화사가 학계에 자문료 준 건 처음
정 교수는 지난해 4월 타이거픽쳐스가 “영화를 만드는 데 자문을 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사도와 인연을 맺었다. 제작사 측은 정 교수가 그의 저서 ‘권력과 인간’과 ‘한중록’ 완역서에서 철저한 사료(史料)를 토대로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를 당파 대립이 아닌 부자 관계에 초점을 맞춰 해석한 데 착안해 영화 제작을 결정했다. 정 교수는 “서사적 요소가 줄어드는 건 아닌지 걱정할 정도로 제작사에서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재현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영화 사도에서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사도세자의 모습이 다수 등장한다. 폭우가 쏟아지는 한밤중에 호위무사를 대동한 사도세자가 영조가 거처하는 경희궁으로 달려가는 영화의 첫 장면이 대표적이다. 정 교수는 “한중록 이본(異本)이 20여 종이나 되지만 내가 출간한 한중록에만 나온 부분이 영화 속에 많이 반영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영화관에서 상영된 사도의 엔딩 크레디트에 정 교수는 도움을 준 여러 명 중 하나로 거론될 뿐이었다. 그의 저서들 역시 참고문헌 중 하나에 불과했다. 정 교수는 “돈을 원한 것도 아니었고 성의 표시를 해달라고 했을 뿐인데 ‘이건 아니다’고 생각했다”며 제작사 측에 합당한 대우를 해줄 것을 다시 요구했다.
타이거픽쳐스는 엔딩 크레디트 수정이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다. 수정하자면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재배포하는 과정에서 수억 원의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제작사는 자문료 및 참고문헌 사용료 형식으로 5000만 원을 대안으로 제시했고, 정 교수가 이를 받아들였다. 오승현 타이거픽쳐스 대표는 “학계와 문화계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 참고문헌 사용료를 지급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자문료 전액을 인문학 전공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쓰겠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