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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빚 늘린 뒤 떼먹을 수도 있다는 트럼프

입력 | 2016-05-09 03:00:00

‘빚 옹호론’에 美전문가들 일제 비판




“나는 부채 왕(king of debt)이다. 부채를 사랑하고 부채를 가지고 노는 걸 좋아한다. 미국 부채가 늘어나 문제가 생기면 국채를 가진 채권자들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미국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70)가 5일 미국 경제 전문 방송 CNBC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빚을 더 내고 여차하면 빚잔치를 할 수 있다는 뜻을 강력히 내비쳐 논란이 일고 있다. 트럼프는 인터뷰에서 “나는 경제가 무너지면 타협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돈을 빌릴 것”이라면서 “경제가 좋으면 그 자체로 좋기 때문에 잃을 게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트럼프는 과거 미국의 파산법을 활용해 자신이 운영하던 회사 4곳을 구조조정하면서 빚을 줄인 사례를 사업 실패가 아닌 성공 케이스로 자랑해 왔다. 경제 전문 매체 CNN머니는 “막대한 부채를 바탕으로 ‘트럼프 제국’을 일군 사업 방식을 국정에도 활용하겠다는 뜻 같은데 국가와 기업은 전혀 다르다. 트럼프가 국제적 파장을 일으킬 사안에 대해 공부가 안 돼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말대로 하자면 미국 정부가 국제 금융시장에서 국채를 찍어 다른 나라에 판 뒤 경제가 좋아지지 않으면 채무 재조정이나 금리 조정 및 빚 탕감 등의 방법으로 돈을 떼먹겠다는 놀부 심보와 다름없다. 이런 상술이 트럼프의 기업 경영에서는 통할지 모르겠지만 세계 금융시장을 주도하는 미국의 대통령 후보 발언으로는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거세다. 정책 당국자의 말 한마디, 단어 하나에 요동치는 국제 금융시장의 예민한 생리를 안다면 이런 식의 ‘막가파’ 발언은 상상하기도 어렵다는 지적이다.

CNBC는 “트럼프가 통화 시스템과 국제 경제 질서에 대한 무지를 드러냈다. 국정에 민간기업 논리를 적용했다가는 유례없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의 부동산 개발 회사가 파산하면 피해는 채권자들만 입지만 민간기업의 회사채와 미국 국채는 차원이 전혀 다른 문제다. 미 국채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꼽힌다. 만약 미국의 채무불이행(디폴트)으로 국채 금리가 급등하면 국제 금융시장에서 다른 금리도 덩달아 치솟아 엄청난 혼란과 위기를 불러오게 된다.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69) 경선 캠프에서 자문역을 하는 진 스펄링 전 국가경제회의(NEC) 의장은 “트럼프는 국가부채에 대한 채무불이행을 고려하겠다고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글로벌 금융 붕괴를 무릅쓰겠다는 뜻”이라고 비난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재무부 관리를 지낸 토니 프라토는 “신뢰를 먹고사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채무불이행을 하겠다는 트럼프의 생각은 미친 아이디어”라고 비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의 발언은 대통령 자질에 대한 의문, 경제 공약 전반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재무부 관료 출신이자 정책자문 기업 ‘비컨폴리시어드바이저스’의 스티븐 마이로 이사는 “트럼프 발언은 아프리카(저개발) 국가 대통령에게나 어울린다”며 맹비난했다.

트럼프는 경선 과정에서 19조 달러(약 2경2000조 원)에 이르는 미국 국가 부채에 대해 “대통령 8년 임기(재선) 동안 해결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이 같은 먹튀 꼼수를 부리는 것이라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미국의 지위가 추락하고 기축통화로서 달러화의 위상도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한편 트럼프는 6일 오리건 주 유진에서 유세하면서 “미국 정치사상 빌 클린턴보다 여성에게 최악인 사람은 없었다”며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르윈스키 스캔들’ 카드를 다시 꺼내들어 클린턴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 그는 7일 워싱턴 주 유세에서도 “힐러리는 정치사상 최악의 여성 학대자와 결혼했다” “(빌 클린턴에게 학대당한) 여성들 중 일부는 빌이 아니라 힐러리가 사건을 수습하는 방식 때문에 무너졌다”고 비아냥댔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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