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기획/우리 아이들을 지켜주세요]<上>아동학대 신고 왜 꺼릴까 동아일보-숙명여대 아동연구소 공동기획 어린이집 “소문나면 문 닫아야” 구급대원 “잠깐 보고 알수 없어” 학대의심 사례 접한 신고의무자 중 64%가 학대 ‘못본척’
《 최근 충격적인 아동학대 사례들이 잇따르고 있지만 아동학대 특례법에 따라 학대 신고 의무자로 지정돼 있는 교사 의사 사회복지사 소방구급대원 등 24개 직업군 종사자의 신고율은 30%가 되지 않는다. 동아일보와 숙명여대 아동연구소는 어린이날을 맞아 신고 의무자 17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들은 왜 학대 앞에서 눈을 감아야만 했을까. 무엇보다 피해 아동의 가정 파탄과 가해자의 보복 등을 심각히 우려하고 있었다. 아동학대 신고에 대한 인식을 일깨우고 학대 아동을 줄이기 위한 대안을 2회로 나눠 진단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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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까지 눌러 둔 허 교사의 손끝은 결국 ‘통화’ 버튼 바로 위에서 멈췄다. 이후 허 교사는 아침마다 등교하는 지윤이의 얼굴이며 팔다리를 샅샅이 훑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는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이지만 현장에서 학대 징후를 판단하는 게 어렵다”고 호소했다.
○ 멍든 아이 봐도 어려운 신고
아동학대 특례법에 따라 초중고교 및 보육시설 교사와 의사, 아동복지시설 봉사자 등 24개 직군은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다. 하지만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2015년 아동학대 현황’에 따르면 전체 아동학대 신고 중 신고 의무자가 신고한 것은 29.3%에 불과하다. 왜 그럴까.
본보와 숙명여대 아동연구소는 지난달 26∼28일 교육과 보육, 의료, 임상심리, 지역아동센터 등 5개 직업군의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를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해 ‘신고가 제대로 되지 않는 이유’를 알아봤다. 이에 앞서 2014년 9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연구소는 아동학대 신고 의무가 있는 17개 직업군에 대해 같은 조사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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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신고자의 신원이 제대로 보호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서울의 한 지역아동센터에 근무하는 손미영(가명) 씨는 6년 전 아동학대 신고를 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센터에 자주 놀러오던 서연이(가명·당시 8세)가 “새아빠가 발가벗은 어른들이 나오는 영상을 보여주면서 내 몸 이곳저곳을 만졌다”고 말하자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친모는 “집안일이니 상관하지 말라”고 주장했고 아이도 경찰서에서 “아빠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게다가 손 씨의 신원이 노출되면서 서연이 부모는 수시로 센터를 찾아와 항의했다. 그는 “신고한 나만 힘들었다. 이후로는 학대를 봐도 신고할 확신이 서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보육교사는 신고하면 어린이집에 불이익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몸을 사리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수정 정심어린이집 원장은 “특히 학대자가 어린이집 내부에 있을 경우 대부분의 원장은 신고보다는 교사를 그만두게 하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상심리 전문가인 최진혜 전 연세대 아동가족상담센터 연구원은 “상담 과정에서 아동학대 의심 상황을 보더라도 직업상 환자의 비밀을 유지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신고를 꺼리게 된다”고 털어놨다. 김자영 서울 용산소방서 소속 소방구급대원은 “구조 과정에서 아동을 접하는 시간이 짧기 때문에 아동학대를 포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인터뷰에 응한 신고 의무자 5명 모두 “아이 환경이 지금보다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별로 들지 않기 때문에 신고하지 않게 된다”고 지적했다.
○ 명확한 가이드라인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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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에 대한 교육 역시 중요하다. 양 원장은 “일방적으로 강의를 듣는 것보다는 신고 의무자들이 소그룹으로 모여 현장에서 일어난 아동학대 사례를 공유하며 함께 해결책을 찾는 형태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선아 숙명여대 아동복지학부 교수(아동연구소장)는 “신고 의무자들의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직업군별로 차별화된 아동학대 의심 체크리스트 등 관련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은 smiley@donga.com·임현석 기자
※이번 기획에는 숙명여대 아동복지학부 4학년 강보경 김혜리 송은현 씨, 3학년 구보경 김주리 씨가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