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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손수지]‘집 걱정’ 없이 살고 싶다

입력 | 2016-04-21 03:00:00


손수지 주부·전 홍보대행사 근무

작년 연말, 오랫동안 살았던 자취방을 떠나 남편과 신접살림을 차렸다. 큰 평수는 아니었지만 15년 만에 원룸이 아닌 방, 주방, 거실이 분리된 공간에 살게 되어 신이 났다. 광역시지만 서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낮은 전세 금액 덕분에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소소한 인테리어 소품도 사고, 매일 바닥에 광이 나도록 쓸고 닦았다. 대부분 대출을 받아 구한 전셋집이었지만 이제 집이라 부를 수 있는 곳에 산다는 생각만으로 뿌듯했다.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이직으로 이사 두 달 만에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야 할 위기가 닥친 것이다. 다행히 친정 부모님이 계신 고향이라 당분간은 그곳에서 지내며 천천히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고향 역시 대도시이긴 하지만 지방이니 집을 구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집이 없었다. 처음에는 남편의 직장과 멀지 않은 곳을 위주로 찾아보다가 지역의 범위를 넓혀 보았지만, 전세를 구하기란 정말 하늘의 별 따기였다. 어쩌다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도 계약을 고민하는 짧은 시간 동안 다른 사람의 차지가 되는 일도 여러 번 있었다.

집 혹은 방을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 생활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부모님 품을 떠난 순간부터 해마다 살 곳을 찾기 위해 발버둥쳤다. 대학생 때는 기숙사에 들어가기 위해 매 학기 필사적으로 학점을 사수해야 했다. 어느 해인가는 기숙사 입사에 실패해서 한 학기 동안 친구 3명과 좁은 원룸에서 부대끼며 생활하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니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 이제는 받아줄 기숙사도 없으니 꼼짝없이 홀로서기를 해야 했다. 나와 같이 지방에서 온 친구들 대부분은 부모님께 지원을 받아 보증금이라도 마련하는 쪽을 택했다. 보증금을 마련해도 월급의 많은 부분을 월세로 부담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얼마 되지 않는 사회 초년생 월급을 생활비와 월세로 쓰고 나면 돈은 통장에 흔적만 남긴 채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다행히 마음 좋은 대학 선배 언니의 도움으로 언니의 자취방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언니 덕에 생활비를 줄여 적은 금액의 보증금이나마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으로 혼자 살 집을 찾으며 또 한 번 위기가 닥쳤다. 회사와 멀지 않은 곳에 집을 얻으려 했는데, 내가 가진 예산으로는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하기 어려웠다. 퇴근이 늦은 날이 많아 안전한 곳에 집을 얻고 싶었는데, 골목에 있거나 어두운 곳에 있는 집이 대부분이었다. 마음에 드는 집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월세가 비쌌다. 결국, 서울살이를 포기하고 외곽의 신도시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이후에도 계약이 끝나는 시기가 올 때마다 직장에서 가까운 곳으로 이주를 시도했다. 월급은 꾸준히 올랐고 저축도 했지만, 폭발적으로 상승하는 월세와 보증금을 따라잡기에는 무리였다. 출퇴근의 교통 체증과 피곤함을 감수하기로 하고, 결혼 전까지 신도시에 눌러앉으며 서울 입성 시도는 무위로 끝났다.

결혼을 하니 집 걱정이 더 커졌다. 전세는 매물 자체가 많지 않고, 빤한 월급쟁이 봉급으로 처음부터 대도시에 집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우리 부부도 두 달간 곳곳을 누빈 끝에야 인연이 닿은 집을 만나게 되었다. 당장 2년 후에는 재계약을 걱정하겠지만, 우선 살 곳을 찾았으니 한시름 놓았다.

얼마 전 혼인율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뉴스를 봤다. 직장 구하기도 어렵고, 직장을 구해도 집 때문에 빚잔치를 시작해야 하니 결혼을 결심하기가 쉽지 않다. 빚이라도 낼 수 있는 형편이라면 다행이다. 빌리기도 갚기도 어려운 사람들이 태반이니 당장 주변 사람들에게도 선뜻 결혼하라고 권하기가 어렵다.

아이들이 장래 희망으로 건물주를 꿈꾸는 곳이 과연 올바른 세상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전세금이 무섭게 상승하고, 내 집 마련도 어려운 현실에서 소득이나 형편에 맞는 주거 대책이 없다면 더 나은 삶에 대한 꿈은 그야말로 꿈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어렵겠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이 집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미래가 왔으면 좋겠다.

손수지 주부·전 홍보대행사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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