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지 주부·전 홍보대행사 근무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이직으로 이사 두 달 만에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야 할 위기가 닥친 것이다. 다행히 친정 부모님이 계신 고향이라 당분간은 그곳에서 지내며 천천히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고향 역시 대도시이긴 하지만 지방이니 집을 구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집이 없었다. 처음에는 남편의 직장과 멀지 않은 곳을 위주로 찾아보다가 지역의 범위를 넓혀 보았지만, 전세를 구하기란 정말 하늘의 별 따기였다. 어쩌다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도 계약을 고민하는 짧은 시간 동안 다른 사람의 차지가 되는 일도 여러 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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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니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 이제는 받아줄 기숙사도 없으니 꼼짝없이 홀로서기를 해야 했다. 나와 같이 지방에서 온 친구들 대부분은 부모님께 지원을 받아 보증금이라도 마련하는 쪽을 택했다. 보증금을 마련해도 월급의 많은 부분을 월세로 부담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얼마 되지 않는 사회 초년생 월급을 생활비와 월세로 쓰고 나면 돈은 통장에 흔적만 남긴 채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다행히 마음 좋은 대학 선배 언니의 도움으로 언니의 자취방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언니 덕에 생활비를 줄여 적은 금액의 보증금이나마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으로 혼자 살 집을 찾으며 또 한 번 위기가 닥쳤다. 회사와 멀지 않은 곳에 집을 얻으려 했는데, 내가 가진 예산으로는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하기 어려웠다. 퇴근이 늦은 날이 많아 안전한 곳에 집을 얻고 싶었는데, 골목에 있거나 어두운 곳에 있는 집이 대부분이었다. 마음에 드는 집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월세가 비쌌다. 결국, 서울살이를 포기하고 외곽의 신도시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이후에도 계약이 끝나는 시기가 올 때마다 직장에서 가까운 곳으로 이주를 시도했다. 월급은 꾸준히 올랐고 저축도 했지만, 폭발적으로 상승하는 월세와 보증금을 따라잡기에는 무리였다. 출퇴근의 교통 체증과 피곤함을 감수하기로 하고, 결혼 전까지 신도시에 눌러앉으며 서울 입성 시도는 무위로 끝났다.
결혼을 하니 집 걱정이 더 커졌다. 전세는 매물 자체가 많지 않고, 빤한 월급쟁이 봉급으로 처음부터 대도시에 집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우리 부부도 두 달간 곳곳을 누빈 끝에야 인연이 닿은 집을 만나게 되었다. 당장 2년 후에는 재계약을 걱정하겠지만, 우선 살 곳을 찾았으니 한시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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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장래 희망으로 건물주를 꿈꾸는 곳이 과연 올바른 세상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전세금이 무섭게 상승하고, 내 집 마련도 어려운 현실에서 소득이나 형편에 맞는 주거 대책이 없다면 더 나은 삶에 대한 꿈은 그야말로 꿈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어렵겠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이 집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미래가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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