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이후! 이제는 경제다]
선박업체 입구… 녹슨 자물쇠만 덩그러니 국내 대형 조선소의 실적 부진은 중소 조선기자재 협력업체들이 밀집해 있는 전남 영암군, 경북 경주시, 포항시 등 다른 지역의 경기 침체로 이어지고 있다. 5일 본보가 찾아간 전남 영암군 대불산업단지의 선박블록 제작업체 C산업은 처리할 물량이 없어 경비직원만 입구를 지키게 한 뒤 다른 출입문에는 자물쇠를 채웠다. 영암=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지난해 2월 현대중공업이 원통형 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FPSO)를 인도한 뒤 말뫼의 눈물은 부쩍 가동을 멈춘 채 서 있는 날이 많아졌다. 일감이 줄어들어 최근에는 가동 횟수를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라고 했다. 말뫼가 아닌 울산 조선업의 부진을 대변하는 구조물이 된 것이다.
○ 흔들리는 최대 산업도시, 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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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강남’이라 통하던 남구 삼산동 일대는 평일 오후 4, 5시면 북적이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던 곳이었다. 하지만 총선 유세가 한창이던 7일 오후 7시 이 일대를 지나는 행인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손님맞이를 위해 켜 둔 네온사인과 음악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테이블 100여 개를 갖춘 한 치킨집 사장은 저녁 첫 손님을 하릴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역에서 꽤 유명하다는 한 고깃집 사장은 “평일과 주말 할 것 없이 예약 손님만으로도 월 매출이 1억2000만 원이 넘었는데 요즘은 10분의 1로 줄어 한 달에 100만 원 남기기도 힘들다”며 “요즘 울산에 있는 회사들은 아예 회식을 하지 않고 가족 단위 외식도 뚝 끊겼다”고 말했다.
대형 크레인 ‘말뫼의 눈물’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 설치된 대형 크레인 ‘말뫼의 눈물’은 2000년대 한국 조선업의 힘을 보여주는 상징물이었다. 하지만 최근 가동을 멈춘 채 서 있는 날이 많아 국내 조선업계 침체를 대변하는 구조물이 돼가고 있다. 현대중공업 제공
○ 들불처럼 번지는 불황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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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지역의 한 선박 부품 납품업체인 B사는 지난해 회사 설립 이후 처음 적자를 냈다. 전년 대비 수주 물량이 20∼30% 줄어든 게 결정적이었다. 정규직원과 사내 하도급업체 직원을 포함해 200명이 넘던 회사에는 겨우 130여 명만 남았다. 회사 측은 그나마도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어 추가적인 정리해고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5일 찾아간 전남 영암군 대불산업단지의 모습도 역동성이나 분주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20만 m² 규모 공장을 운영하던 선박블록 제작업체 C산업은 최근 3개월 동안 직원들에게 월급의 20%밖에 주지 못했다. 지금은 아예 물량이 없어 경비직원 1명만 입구를 지키게 한 뒤 정문을 제외한 모든 출입문에 자물쇠를 채워놓았다. 인근의 한 선박 도장업체 공장은 이미 경매에 넘어갔고, 다른 선박의장품 제조업체에도 ‘공장 임대’라고 쓴 현수막이 걸렸다.
선박 부품 제조사 해원산업의 황택기 대표는 “불과 2, 3년 전까지만 해도 산단 내 도로들은 불법주차 차량으로 몸살을 앓았다”며 “지금은 텅텅 비어버린 도로들이 추락한 대불산단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전했다.
대불산단 내 고용 인원은 2013년 1만2943명, 2014년 1만2919명, 지난해 1만1171명으로 감소하고 있다. 선박블록 제작업체 대상중공업의 구내식당도 매일 아침 150여 명이 함께 식사를 하다 지금은 30∼40명으로 줄었다. 이 회사 문제균 사장의 사무실 책상에 놓인 공장가동률 전망치 표에는 8월과 10월은 공장가동률이 10% 안팎, 9월에는 ‘0’으로 표기돼 있었다. 문 사장은 “우리 회사 임직원이 250명으로 1년 만에 절반이 줄었다”며 “장기 침체를 벗어날 마땅한 대안도 없는 상황이라 답답한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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