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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용의 다른경제]강봉균 김종인이 파놓은 치명적 함정

입력 | 2016-04-13 03:00:00


홍수용 논설위원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지난달 29일 내놓은 ‘한국판 양적완화’ 공약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이달 6일 밝힌 ‘삼성 전장(電裝·자동차 전자부품장비)사업 광주 유치’ 공약을 곱씹어보면 생각이 복잡해진다. 이런 손에 잡히지 않는 공약이 표에 도움이 될까.

두 노장은 이 공약들이 이세돌과 알파고의 4번째 대국에서 이세돌을 승리로 이끈 78수가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뜬금없어 보이지만 나중에 속뜻을 깨닫게 되는 ‘신의 한 수’ 말이다.

‘적들의 공격을 유도하라’

이 두 공약은 ‘허점이 분명하다, 상대편이 쉽게 공격할 수 있다, 공방이 이어지면서 종전의 쟁점이 흐려진다, 치명적 허점을 나중에 수정할 여지가 많다’는 공통점이 있다.

새누리당의 양적완화 공약은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기업 구조조정에 돈을 투입한다는 구상이다. 구조조정이라는 전제부터 말이 안 된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부와 채권단이 대마(大馬)를 날릴 수 있겠나? 부실기업의 동아줄이던 산업은행이 악역을 맡을 리도 없다. 무엇보다 제로(0)금리 전에 양적완화를 한 전례가 없다. 기준금리 1.5%를 둔 채로 양적완화를 해봐야 효과가 나지 않는다. 통화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는 A 씨는 “나도 같은 의견이지만 총선을 앞두고 있어 공개적으로 비판할 수 없다”고 했다. 강봉균 버전의 양적완화는 좀비기업을 되살리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야당이 이 공약을 비판하는 가운데 새누리당의 막장공천과 알맹이 없는 서민공약은 잠시 잊혀졌다. 이후 기획재정부가 강봉균 버전을 고친 일명 ‘온건한 양적완화방안’을 제안하며 애프터서비스를 할 것이다. 산은 금융안정기금 계정에 돈을 넣어두고 구조조정 실탄으로만 쓰는 방식이다.

광주에 삼성을 유치하는 더민주당의 공약에 대해 삼성은 “그런 논의를 한 적 없다”고 부인했다. 더민주당에서 삼성 측에 “해명을 너무 강하게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니, 제1야당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그런데도 ‘지역민이 도와줘야 삼성을 광주로 가져올 수 있다’는 더민주당의 논리에 솔깃해하는 유권자도 있다. 공천 과정에서 불거진 계파 갈등에 대한 비판이 희석되는 효과도 있었다. 김 대표는 투자 확대라는 여당의 논리를 끌어들여 외연을 넓혔다. 더민주당으로선 전장사업 대신 다른 사업을 유치하는 등 나중에 공약을 조정할 여지도 있다.

새누리당의 양적완화 공약은 조원동 경제정책본부장의 아이디어다. 그는 2013년 8월 세법 파동 때 “거위 깃털을 살짝 뽑는 방식”이라고 해 공분을 샀고, 지난해 10월 음주운전 사고 후 거짓말을 해 강한 법적 처벌을 자초했다. 더민주당의 경제통인 주진형 국민경제상황실 대변인은 한화투자증권 사장 재직 당시 직원과의 소통에서 문제를 드러냈고, 지난달에는 새누리당 강 위원장에 대해 “이상한 분은 아닌데 노년에 조금 안타깝다”는 막말을 했다.

조원동·주진형의 가벼움


두 브레인은 머리에 비해 신중함이 떨어지는 점에서 닮았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데 익숙하겠지만 청년의 절절한 아픔을 공감하며 일자리 정책을 고민했을지는, 글쎄 모르겠다. 양적완화나 삼성 유치는 정치 이슈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가 걸린 경제 이슈다. 정당이나 지역구 의원이 목소리 높여 풀 문제가 아니다. 여야가 우리 앞에 툭 던진 이 공약은 ‘미끼’다. 투표장에서 고민할 가치가 없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