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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펜스의 한국 블로그]여러 국기 올렸다 화들짝 놀란 이유

입력 | 2016-04-12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그레고리 림펜스 벨기에 출신 열린책들 해외문학팀 차장

어렸을 때 국기를 무척 좋아했다. 이웃나라와 먼 나라들의 국기였다. 여덟아홉 살 때에는 세계 지도책을 살펴보면서 온갖 국가 이름과 해당 국기들을 암기했었다.

나는 멋있는 단풍잎 기를 가진 캐나다에서 태어난 것이 여간 자랑스럽지 않았다. 내가 자란 벨기에의 국기는 색깔(검정 노랑 빨강)이 시각적으로 별로 조화롭지 않아 좀 못생겼다고 몇 번 생각했지만, 프랑스 이탈리아 아일랜드와 같이 고전적인 ‘세로 삼색기’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영국 유니언 잭의 독특함은 신기했다. 노르딕 십자가 나온 스칸디나비아 국기들의 디자인은 그 차이가 흥미로웠다.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 등 다른 대륙의 국기들을 처음 보고는 유럽의 여러 국기보다도 훨씬 다양한 모습에 다소 어지럽기도 했다. 여러 모양의 문장, 별, 태양, 초승달, 건물, 식물, 물건, 도구, 법륜, 칼, 방패와 창, 국기 안에 또 다른 국기 등등 무한정으로 다양한 그림이 포함될 수 있는 게 재미있었다. 무늬뿐 아니라 무제한 결합의 색깔도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솔직히 태극기는 언제 처음 잘 살펴봤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어렸을 때는 태극기의 멋과 그 요소들의 깊은 의미를 완전히 놓쳤다. 하지만 첫 방한부터 정이 들어 어느덧 태극기가 친숙해졌고, 이젠 오래된 친구의 얼굴처럼 보면 반갑다.

사춘기에 접어들자 학교에서 여러 국기의 어두운 면도 보게 됐다. 국기가 의미하는 바가 위험한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국기란 한 국가를 상징할 뿐만 아니라 그 국가의 권력과 이데올로기를 표현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아무리 멋있어도 프로파간다의 도구로서는 매력이 확 떨어졌다. 국기 디자인이 지닌 아름다움의 마법에서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중학교 때 어느 역사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국기가 많을수록 정말 무섭다는 것도 느꼈다.

최근에는 내 페이스북에 올리는 국기가 많아지고 있어 이따금 당황하기도 한다. 지난해 1월 프랑스 ‘샤를리 에브도’ 기자들의 피살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때 피해자들과의 결속력을 표현하기 위해서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을 ‘나도 샤를리다’란 구호로 바꿔 놓았었다. 지난해 11월 한층 더 충격적인 파리 테러 사건이 터진 뒤에는 프로필 그림을 프랑스의 국기로 바꿨다. 벨기에 사람인 내가 어느 날 프랑스의 국기를 프로필 이미지로 쓰게 될 줄은 솔직히 상상도 못했었다. 벨기에인과 프랑스인 사이는 좀 특별하다. 친한 이웃집 사람처럼 서로 좋아하는 만큼 서로가 잘 놀리기도 한다.

지난달에는 또 다른 국기로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을 교체하게 되었다. 앙카라와 이스탄불에서 발발한 테러 소식을 듣고 터키 국기로 바꾼 것이다. 사진을 바꾸자마자 독일에 사는 쿠르드족 친구로부터 오랜만에 쪽지를 받았다. ‘도대체 왜 터키의 국기를 올렸느냐’고. 테러 피해자와의 연대를 표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친구는 ‘알겠다, 하지만 나한테는 이 국기가 바로 터키가 매일 쿠르드 민족에게 가하는 압제를 상징한다’는 답장을 보냈다. 프로필 사진으로 올린 터키의 국기를 사람마다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프랑스의 국기도, 태극기도, 성조기도 그럴 것이다. 25년 전 학교에서 배운 국기들과 대비해 보면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굳어진다.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국기가 좀 지겨워졌다. 그러던 참에 올해 내 고향인 브뤼셀에서 일어난 테러 뉴스를 봤다. 내 고향에 가해진 고통에 대한 애도와 공감은, 도저히 벨기에 국기만으로 표현할 수 없겠다고 느꼈다. 국기는 더 이상 보기도, 생각하기도 싫어졌다. 페이스북 프로필은 초승달과 별이 새겨진 터키 국기 대신, 내가 좋아하는 에마뉘엘 기베르 작가의 삽화로 다시 바꿔 놓았다.

그레고리 림펜스 벨기에 출신 열린책들 해외문학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