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대표작 ‘시우란’ 등 조선시대-근대-현대 작품들 망라… 들쭉날쭉 전시품 밀도는 아쉬움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 시절 유일한 혈육인 서자 상우에게 그려준 것으로 전해지는 수묵화 ‘시우란(示佑蘭)’. 난초를 그리는 마음가짐에 대해 적은 글 마디마디에 세상살이 파고를 어렵사리 헤쳐 갈 아들을 염려하는 깊은 부정(父情)이 스며 있다. 포스코미술관 제공
한국화가 장우성(1912∼2005)의 ‘야매(夜梅·1996년)’. 2013년 같은 장소에서 열린 매화 그림전에도 유사한 작품이 전시됐다.
그러다 보니 가만히 앉아 하염없이 들여다보고 싶어지는 그림과 그저 한 번 잠깐 눈길로 스쳐 지나게 되는 그림이 뒤섞여 있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처럼 광대한 공간에서라면 모를까, 그저 개인의 취향 때문에 전시 작품 밀도가 들쑥날쑥하게 여겨진다 하기는 어렵다.
한국화가 조환 씨(58)가 철과 폴리우레탄으로 제작한 ‘무제’(2015년). 김규진(1868∼1933)의 10폭 병풍 ‘설죽(雪竹)’과 마주 보도록 배치했다.
“‘난초 그리기는 자기 마음을 속이지 않는 태도에서 시작해야 한다. 잎 하나, 꽃술 하나라도 자기 마음에 부끄럽지 않은 뒤에야 남에게 보여줄 수 있다.”
이정의 ‘묵죽도(墨竹圖·1623년)’, 근대 한국화가 장우성의 ‘야매(夜梅·1996년)’ 등도 눈여겨볼 만하다. 철로 만든 대나무 설치작품을 대나무 수묵화와 마주 보도록 배치한 의도는 짐작이 가지만 짐작 이상의 감흥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나전칠기와 백자들은 드문드문 맥락 없이 구색 맞추기 식으로 놓여 있다.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 이이남 작가의 한국화 동영상 작품은 원형에 담긴 가치와 기술이 세월의 흐름 속에 흩어져 되살려지지 못함을 확인시킨다. 토요일 오후에는 건물 로비에서 이따금 열리는 결혼식 소리가 전시실로 울려 들어와 관람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 가급적 피하길 권한다. 02-3457-1665
:: ‘四君子, 다시 피우다’전 ::
공연장처럼 물을 뿌리거나 박수와 ‘떼창’ 같은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는 일도 드물다.
다른 문화 이벤트에 비해 미술품 전시는 형식을 변용할 여지가 크지 않아 보인다.
세계 미술계 흐름을 선도한다는 해외 유수 비엔날레나 아트 페어도 마찬가지다.
공간의 특성에 의지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전시의 형식은 비슷비슷하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