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논설위원
민주화 이후를 들여다보면 1992년 대선의 김영삼, 97년의 김대중, 2002년의 이회창은 모두 이전 대선에서 2위였다. 2012년의 박근혜는 이전 대선의 2위나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이 승리한 2007년 대선 레이스는 박근혜 후보가 2위를 한 한나라당 경선에서 사실상 끝났다. 유일한 예외가 2002년 대선에서 승리한 노무현 대통령 정도다. 당시에도 ‘노무현이 이긴 선거가 아니라 이회창이 진 선거’라는 말이 돌았다.
이전 대선 2위가 강자
자신을 ‘문재인의 친구’라고 소개하기도 했던 생전의 노무현 대통령은 그를 향해 “저 사람은 정치할 사람이 아예 아니야. 전혀 (정치와) 안 맞아”라고 평가하곤 했다. 그런 문재인을 ‘폐족(廢族·벼슬을 할 수 없게 된 일족)’이던 친노가 노무현의 비운(悲運)으로 기사회생하자 ‘고용 사장’으로 내세워 치른 게 지난 대선이었다.
하지만 요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달라졌다고 한다. 벌써부터 ‘이번 총선의 진정한 승자는 문재인’이란 얘기가 나온다. 김종인이란 칼을 빌려 이해찬류의 ‘올드 친노’를 쳐내고 친문(친문재인) 세력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친노 브레인인 ‘3철(이호철, 전해철, 양정철)에 휘둘린다’는 얘기도 쏙 들어갔다. 무엇보다 좋게 말하면 권력의지, 나쁘게 말하면 대권욕이 강하게 느껴진다. 김종인 더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받은 1460만 표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일갈했지만 아무나 그런 성취를 경험할 수는 없다. 대선 당시 운집한 군중의 엄청난 연호가 ‘정치할 수 없는 사람’ 문재인을 변하게 한 기폭제라고 나는 본다.
문 전 대표는 지난달 30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때문에 야당 단일화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며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압박했다. 지난 대선 직전 자신과 ‘이념적 차이를 느꼈다’는 안철수의 자택을 찾아가 문전박대를 당했을 때와는 180도 처지가 바뀌었다. 본보 창간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재인의 대선주자 지지율(16.8%)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18.9%)과 함께 2강 구도를 구축했다.
‘고용 사장’ 이미지 벗어야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