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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김갑식]이세돌처럼 진다면

입력 | 2016-03-25 03:00:00


김갑식 문화부장

19세기 일본에서 막부가 지배하던 시기 바둑은 그냥 바둑이 아니었다. 영주들의 직접적인 무력 충돌이 줄어들면서 바둑은 이들의 힘을 과시하는 또 다른 전쟁터가 됐다. 영주의 후원을 받는 바둑 명가(名家)들은 자신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사활을 걸었다.

1835년 7월 명인기소(名人碁所·막부 시대의 바둑관직)를 놓고 혼인보(本因坊) 가문의 조와와 스승을 대신해 출전한 아카보시 인테쓰가 대국을 한다. 나흘간의 격렬한 대국이 벌어졌다. 아카보시는 결국 상대의 묘수에 견디지 못하고 246수 만에 돌을 던졌다. 대국 직후 그는 피를 토하고 두 달 후에 눈을 감은 것으로 알려졌다. 바로 바둑사의 전설로 남아 있는 토혈국(吐血局)이다.

최근 이세돌 9단과 구글의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가 펼친 세기의 대국이 오래전 인상 깊게 들었던 과거의 기억을 살려냈다. “바둑이 뭐라고 죽음까지”라며 궁금증과 놀라움을 동시에 느꼈던 기억이 생생하다.

꼭 30년 전인 1986년 조치훈 9단의 일화도 있다. 당시 전성기를 맞은 조 9단은 일본 최대 기전인 기성전 타이틀전을 10여 일 앞두고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두 다리와 왼손 골절, 머리 찰과상 등 전치 6개월의 중상이었다. 담당 의사는 대국을 포기하라고 만류했다. 하지만 조 9단은 “바둑을 둘 수 있는 오른손과 머리만 멀쩡한 건 하늘이 나에게 바둑을 두라는 뜻”이라며 대국을 강행했다. 그는 다리와 왼쪽 손목에 깁스를 하고 대국장에 들어서 전대미문의 휠체어 대국이 이뤄졌다. 결국 승리는 도전자 고바야시 고이치 9단의 차지가 됐지만 조 9단은 이른바 ‘목숨을 걸고 둔다’는 승부사의 상징이 됐다.

이 9단은 세기의 대국에서 1승 4패로 알파고에게 패했다. 완패에 가깝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에게 열광했다. 알파고가 슈퍼컴퓨터 수준이 아니라 기술적으로 1000여 명의 ‘훈수꾼’을 삽시간에 동원할 수 있는 괴물임이 드러나서일까? 궁지에 몰린 인류의 대표에 대한 호모사피엔스 차원의 안타까움일까? 인공지능이 초래할 미래사회에 대한 불안과 공포 때문일까?

이런 원인들이 모두 작용했다는 게 개인적 생각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것은 대국 현장에서 보여준 이 9단의 모습 자체였다. 진심(眞心)과 투혼, 명분의 3박자가 어우러졌다.

패배 뒤 그의 소감을 옮겨 보자. “사실, 충격적이다. … 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너무 놀랐다.”(1국) “완패였다. 초반부터 한 번도 앞선 적이 없다. 이제부터는 한 판이라도 이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2국) “3국에서 중압감을 이기기에는 제 능력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4국 승리 뒤 그는 명분을 취했다. 백이 승부에서는 유리하지만 흑으로도 이겨 멋지게 유종의 미(美)를 거두겠다는 것이다. 그는 대국마다 초읽기에 몰리면서도 혼신의 힘을 다해 알파고와는 다른 인간계 바둑의 매력까지 보여줬다.

바둑 용어는 알게 모르게 세상사에 비유돼 왔다. 포석(布石)과 행마(行馬)부터 미생(未生) 완생(完生), 국면(局面)과 대마불사(大馬不死), 수순(手順)과 복기(復棋)….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하지만 최근 공천 과정에서 드러난 정치의 수준은 여야 가릴 것 없이 국민의 눈높이에서 한참 밑돌고 있다. 사람들은 지금까지의 공천 과정만 복기해도 벌써 돌을 던졌어야 하는 패자(敗者)들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욕심을 감춘 꼼수와 누군가의 뜻만 받드는 외길 수, 자신의 잘못을 남 탓으로만 돌리는 후안무치한 수만 난무한다.

바둑이나 인생이나 모두가 승자일 수는 없다. 하지만 이세돌처럼 진다면 그는 승자다.

김갑식 문화부장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