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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담보대출, 동네병원까지 영업

입력 | 2016-03-24 03:00:00

“도입 2년… 더 신청할 기업 없어”
은행들, 실적압박에 마구잡이 나서… 병원들 “무작정 돈 쓰라니 난감”




서울 강남구에서 성형외과를 운영하는 정모 원장은 최근 평소 거래하던 A은행 지점에서 대출을 더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 은행 직원은 “기술력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상품이 있다”며 “소액이라도 좋으니 대출을 신청해 달라”고 설득했다. 정 원장은 “은행이 시키는 대로 대출에 필요한 기술력 평가까지 받았지만 필요하지도 않은 대출을 무작정 쓰라고 하니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근 시중은행들이 기술금융 실적을 늘리기 위해 동네 병원에까지 기술담보대출 영업에 나서고 있다. 23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A시중은행은 지난달 직원들에게 “병·의원에도 기술담보대출이 가능하니 영업을 통해 실적을 늘리라”는 내용의 공지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금융은 공장과 같은 담보 자산이 없는 중소기업이 특허권 등 기술을 담보로 대출받는 것으로 2014년에 도입됐다. 금융위원회는 2015년부터 1년에 두 번씩 각 은행의 기술금융 이행 실적을 발표하고 있다. 금융 당국의 ‘줄 세우기’에 실적 압박을 느끼는 은행들이 일선 병원에까지 기술금융을 위한 ‘영업’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기술담보대출을 받으려면 기술보증기금 등 4곳의 기술신용평가기관(TCB)에서 평가서를 받아야 한다. 이렇다 할 특허가 없는 병원이라도 자신의 분야에서 일정한 노하우가 인정되면 평가 등급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TCB 가운데 한 곳인 이크레더블 측 관계자는 “병원에 대한 평가 항목은 있지만 기준이 아직 명확하지는 않다”며 “같은 병원이라도 평가기관에 따라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은행 직원들 사이에선 ‘특정 평가기관이 병원 기술신용평가에 후해 영업에 유리하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술금융을 도입한 지가 2년 가까이 되다 보니 제조업, 건설업 등에서는 신청할 만한 기업을 더 찾기가 힘들다”면서 “계속 실적을 내야 하는 일선 영업점에서 새로운 기업을 찾다 보니 이제 병원에까지 가서 영업을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