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쿠바 88년만의 정상회담]오바마-라울 어색한 공동회견
21일 역사적인 쿠바 방문 이틀째를 맞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아바나 혁명궁전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1961년 단교(斷交)된 양국 관계를 복원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양국 정상은 핵심 이슈인 대(對)쿠바 금수 조치 해제, 민주화 등을 놓고서는 견해차를 보여 완전한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갈 길이 먼 현실을 확인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2시간 동안의 회담을 마친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스페인어를 사용해가며 회담에 의미를 부여했다. “오늘은 양국 관계에 새로운 날(nuevo dia)”이라고 했다. 카스트로 의장도 미국 여성 수영선수 다이애나 나이애드(64)가 2013년 아바나에서 미 플로리다까지 횡단한 사례를 거론하며 “그녀가 할 수 있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며 관계 정상화에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하지만 두 정상은 이내 이견을 노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카스트로 의장의 개방 정신을 높이 평가한다”고 전제한 뒤 “쿠바의 민주주의, 인권 문제를 놓고 허심탄회하게 논의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수 조치는 미국이나 쿠바에 별 도움이 안 된다. 언젠가는 해제될 것”이라면서도 “(해제의 열쇠를 쥔) 미 의회가 얼마나 빨리 금수 조치를 해제할지는 쿠바 정부가 인권 문제에 대한 우려를 어떻게 해소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카스트로 의장의 강한 어조에 오바마 대통령은 살짝 당황하는 듯했다. “이쯤 하면 질문은 됐다”고 회견을 마무리한 것도 오바마 대통령이었다. 그러자 카스트로 의장은 오른팔로 오바마의 왼팔을 잡고 들어올렸다. 양국 관계를 힘차게 복원하자는 제스처였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왼팔에 힘을 쭉 빼 손목이 흐느적거렸다. 인권 문제에 대한 카스트로의 인식에 동의할 수 없다는 뜻으로 보였다. AFP통신은 “(회담을 잘 마무리했다는 취지로) ‘승리의 팔’을 들어올리려는 카스트로의 노력이 실패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두 정상의 이견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쿠바 한복판에서 카스트로 의장이 인권 문제를 거론토록 한 것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는 평가도 있다. 운전사인 라울 리오스 씨는 AP통신 인터뷰에서 카스트로 의장이 “세계 어느 국가가 완전히 인권을 보장하느냐”고 말한 것을 거론하며 “카스트로 의장이 쿠바에서 모든 인권이 존중받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인정한 점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2일 아바나 대극장에서 쿠바인들을 상대로 첫 대중연설을 하고 쿠바의 실질적 개혁 개방을 위해서는 보다 많은 정치적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쿠바 미국대사관에서 쿠바의 반(反)정부 인사들과 시민운동가들을 만나고, 미 메이저리그 야구팀 탬파베이 레이스와 쿠바 국가대표팀의 시범경기를 본 뒤 2박 3일간의 쿠바 일정을 마무리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